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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와 여백에 예술이 있다”

“서구식 문화 예술이 우리 전통보다 더 좋고 우월하다는 인식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해외 무대로 나가서 보면, 그 반대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 전통을 무시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것을 알고, 느끼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잘 안 된다. 10~20세대에서 전통을 자주 접하지 못하면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전통을 이해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40~50세대다. 10~20이 40~60이 되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갖고 있을까 걱정이다.”

“학교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교과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국악 등 문화예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전통과 함께 인성도 중요한 덕목인데, 전통이 이 같은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다.”

김동순 선생은 춤꾼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인 살풀이춤을 춘다. 살풀이춤은 지난 1990년 10월 10일 지정한 무형문화재(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다. 살풀이춤은 무속의식(巫俗儀式)에서 액(厄)을 풀어낸다는 뜻, 즉 살(煞)을 푸는 춤이다. 액(厄)과 살(煞)의 뜻을 풀면 ‘재앙, 나쁜 것, 불운’을 ‘풀다, 없애다, 다스린다’는 말이다.

[인터뷰] 살풀이 춤꾼 김동순 선생

“틈새와 여백에 예술이 있다”

사람과사회 2018년 여름·가을 통권6·7호

김동순 선생은 춤꾼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인 살풀이춤을 춘다. 살풀이춤은 지난 1990년 10월 10일 지정한 무형문화재(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다. 살풀이춤은 무속의식(巫俗儀式)에서 액(厄)을 풀어낸다는 뜻, 즉 살(煞)을 푸는 춤이다. 액(厄)과 살(煞)의 뜻을 풀면 ‘재앙, 나쁜 것, 불운’을 ‘풀다, 없애다, 다스린다’는 말이다.

살풀이춤은 이동안(李東安), 김숙자(金淑子), 이매방(李梅芳), 한영숙(韓英淑) 선생 등을 대가(大家)로 손꼽는다. 국무(國舞)로 일컫는 이매방의 춤과 일생은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우봉 이매방 선생의 춤 일생’(한국문화재재단 홈페이지, 2015년 10월), ‘춤의 길 77년, 승무·살풀이춤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중앙일보 인터뷰), 2002년 8월 24일 운현궁에서 열린 명인 명창 공연 영상(유튜브) 등을 참고하면 된다.

2018년 5월 25일(금) 우포늪 근처에 있는 ‘우포숨터 반딧불’(경남 창녕군 대합면 우포2로 430-14, 주매리 559-6, 055-532-3341)에서 김동순 선생을 만났다. 반딧불은 노기돌 우포늪생태관광네트워크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살풀이는 출 때마다 달라진다. 각본은 있지만, 달라진다. 달라지는 것, 한국 무용은 거의 마찬가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살풀이는 어려운 춤이다. 살풀이는 내 자신이다. 무엇인가와 교감하고 이 과정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미세한 점이 많고 복합적인 것을 갖고 있는 춤이다. 그러기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교감하는가는 무척 중요하다. 살풀이를 내 자신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김동순 선생 인터뷰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진행했다. 공연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해 간단하게 준비를 마친 후 방에서 촬영했던 까닭에 춤사위를 자연스럽게 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동순 선생은 이매방 선생 제자인 오미자 선생에게 살풀이를 배웠다. 1992년 무렵 탈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산대놀이는 송파산대놀이, 본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 등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특히 양주별산대놀이는 경기 지방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가면극이다. 탈춤을 배우다가 지인의 소개로 98년에 오미자 선생을 만났다. 그러면서 살풀이춤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춤을 접할 수 있었다.

서울에 머물며 대략 5년 동안 지내면서 춤을 배웠다. 종종 춤 대회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춤만 할 수는 없었다. 공연이나 춤을 출 수 있는 무대에 매일 갈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연극, 뮤지컬은 물론 학생에게 안무 지도를 하는 일도 하면서 생활을 이어갔다.

전통 춤에 빠지다

김동순 선생이 춤을 접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탈춤을 배우다가 전통 춤을 만나면서 춤에 빠졌다고 말했다. 탈품에서 전통 무용인 살풀이춤으로 온 까닭을 물었다.

“탈춤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선비춤(사풍정감, 士風情感) 등 한국 전통 춤을 접하면서 탈춤에서는 느끼지 못한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춤은 전통 토속 뮤지컬인 셈인데, 탈춤과 다른 게 보이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에 오미자 선생을 만났다.”

여러 춤을 접한 후 살풀이춤을 고른 이유도 궁금했다. 전통 춤을 만난 후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게 있었기 때문에 살풀이춤을 선택했을 것 같았다.

“살풀이춤도 몇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든 살풀이춤은, 장르로 보면 용어 등 차이가 있지만, 신과 예술의 만남이라고 본다. 사풍정감(한량무, 즉흥무, 흥춤, 선비춤으로 부르는 남성춤으로 전통과 권위의 사회 질서를 기본적인 틀로 하는 사대부 계층의 젊은 선비의 생활을 표현한 춤)은 사실 한량이 추던 춤이라고 봤기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컸던 춤을 끌어와 좋게 생각하는 춤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이 춤은 부산 동래학춤에서 볼 수 있듯이 몸짓으로 추는 춤이다. 느림과 빠름이 섞여 있는 산조(散調) 장단처럼, 그리고 서서 추는 입무(立舞)다. 현대무용과 달리 전통 춤은 더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배울 수 있는 곳도 의외로 많다. 하지만 공연은 짧고 기회도 적다. 이 점은 아쉬운 점이다.”

이매방
이매방(李梅芳, 1927.05.05~2015.08.07)은 대한민국 무용가다. 본명은 이규태(李奎泰)며, 호는 우봉이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권번 기생을 가르치던 할아버지 이대조에게서 춤을 배웠다. 이매방은 6년 동안 기생들 사이에서 춤을 배웠고, 이후 박영구에게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웠다. 이매방은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두 가지 분야 무형 문화재 보유자’가 됐다.
목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1년 부산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했다. 1953년에 부산, 1954년 광주에서 무용발표회를 가졌다. 1959년에 서울 원각사에서 공연했고, 1967년에는 국립극장 발표회를, 1976년에는 문예진흥원 지원을 받아 창작무용발표회를 가졌다. 1977년에 「삼현승무(三絃僧舞)」, 「보렴승무」(菩念僧舞)로 이매방 승무 발표회를 가졌다.
이매방은 1984년에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1987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1993년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6년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등을 지냈다. 이매방 명인은 200명 정도의 여러 제자를 가르쳤다. 유명한 제자로는 안춘자·이길주·홍금산(살풀이춤), 김지립·김호동·박종필·신재자·양종승·임이조(승무) 등이 있다. ‘승무’와 ‘살풀이춤’을 동시에 이수한 제자로는 이호영·김진홍·박소림·송수남·오미자·송재섭·최창덕·채상묵 등이 있다.
-자료=위키백과

“최승희는 자기 생각과 색깔 뚜렷”

춤과 춤꾼, 무용과 무용가를 말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이가 최승희(崔承喜, 1911.11.24~1969.08.08) 선생이다. 김동순 선생은 최승희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무용가 최승희는 자기 생각과 색깔이 뚜렷한 춤꾼이라고 평가했다.

“최승희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색깔이 있다. 개인, 그러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색깔에 맞춰 그 색을 무용에 담아 표현했다. 자기의 색깔이 아주 뚜렷하다. 전통에서 시작해 자기만의 춤을 만든 사람이다. 인위적인 게 거의 없다. 생각, 마음, 표현이 어우러지고 동작은 자연스럽고 평안하다. 그래서 멋지다. 표현하지 어려울 것 같은 부분조차도 잘 드러내서 좋다.”

최승희처럼 살풀이도 살풀이만의 색깔과 멋과 맛이 있을 것이다. 김동순 선생은 살풀이를 추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살풀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어려운 춤이고 할 때마다 달라지는 게 살풀이이고 살풀이춤이라고 말했다.

“전통 음악, 즉 국악은 빈틈을 채우면서 만들어간다. 연주로만 끝나지 않고 여기에 춤을 연결하면 무한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다. 연주자의 마음, 무대의 상황, 관객의 반응 등 주변에 있는 환경을 반영해 여백을 맞출 수 있다. 틈새에 예술이 있는 셈이다. 또 피리, 대금, 사물놀이 악기를 다루는데, 전통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춤을 출 수 있다. 춤과 악기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살풀이는 내 자신이다”

“살풀이는 출 때마다 달라진다. 각본은 있지만, 달라진다. 달라지는 것, 한국 무용은 거의 마찬가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살풀이는 어려운 춤이다. 살풀이는 내 자신이다. 무엇인가와 교감하고 이 과정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미세한 점이 많고 복합적인 것을 갖고 있는 춤이다. 그러기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교감하는가는 무척 중요하다. 살풀이를 내 자신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살풀이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공연도 많지 않을 것 같다. 현대무용이든 전통 춤이든 춤이라는 장르가 다른 예술에 비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동순 선생은 전통 무용에 관심이 있다면 국립극장 공연을 챙기면 좋다고 조언한다. 정기공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관심이 있는 창극단이나 공연 소식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 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살풀이춤
살풀이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였던 굿판에서 무당이 나쁜 기운을 풀기 위해 추는 즉흥적인 춤이다. ‘도살풀이춤’ 또는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으로 부르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에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란 말을 쓴 데서부터 살풀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백색 치마저고리를 입으며, 멋스러움과 감정을 한껏 나타내기 위해 하얀 수건을 들고 살풀이 곡조에 맞춰 춤을 춘다. 지금의 살풀이춤은 경기 지방과 호남 지방에서 계승한 춤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나라의 안정과 서민 문화가 활발히 나타나면서 광대의 춤으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 때 굿을 금지하자 무당 중 일부가 집단을 만들어 춤을 다듬으면서 점차 예술적 형태를 갖췄고, 오늘날 한국 전통 춤의 대표로 정착했다.
살풀이춤은 살풀이 가락에 맞춰 슬픔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하는 춤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큰 고전 무용이다. 살풀이는 무속 의식(巫俗儀式)에서 액(厄)을 풀어낸다는 뜻인 곧, 살(煞)을 푸는 춤으로 일명 도살풀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그 해의 액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이고 살을 푸는 춤을 추었기 때문에 무속(巫俗)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이지만, 무속의 형식이나 동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 중 살풀이 장단이라는 독특한 무악(巫樂) 장단이 있어 남도(南道) 무무(巫舞) 계통이라는 설도 있다.
또 일설에는 처음에 무당들이 살풀이 가락에 맞추어 신(神)을 접하기 위한 수단으로 춤을 추었으나, 뒷날 이들이 관기(官妓)가 되거나 사당패(社堂牌)로 그 신분을 달리 했고, 다시 사당패가 분화돼 기녀(妓女)로 탈바꿈하는 동안 변화되면서 점차 멋을 부려 아름다움을 보이는 기법으로 변천해 기방무용(妓房舞踊)으로 계승·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변천 과정에서 살풀이춤은 기방인(妓房人)이 입춤즉흥무, 수건춤 등으로 부르면서 보편적 춤사위로 자지를 잡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춤이 어느 시기에 살풀이춤으로 개칭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헌상으로는 1934년에 한성준(韓成俊)이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창립하고 1936년에 부민관(府民館, 경성부민관 京城府民館)에서 제1회 한성준무용발표회를 하면서 방안춤을 극장무대에 올려 최초로 살풀이춤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 뒤 점차 대중 사이에서 본격적인 살풀이춤이 등장했으며,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춤으로서 그 예술성을 인정해 계승하고 있다. 이 춤을 전문적으로 연희해 온 사람으로는 이동안(李東安), 김숙자(金淑子), 이매방(李梅芳), 한영숙(韓英淑) 등을 꼽는다.
-자료=위키백과

그런데, 전통 춤은 따분하다는 생각이 많다. 김동순 선생은 “그렇지 않다”며 “공연을 접하면서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자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전통 춤 공연은 틀이 아주 짧다. 간단하다. 관객의 호응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지루함보다는 전통 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게 더 큰 아쉬움이다. 그나마 관심이 있는 연령은 젊다 해도 대부분 40~50세대 이상이다. 일상은 물론 방송이나 다른 매체에서 관심을 많이 갖는 게 여러 모로 좋은 일인데, 그렇지 않다.”

“모든 예술은 힘들다”

공연은 얼마나 하는 편일까. 대답은 예상했던 것처럼 빈약했다. 김동순 선생처럼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춤꾼은 대개 작은 공연이나 아는 사람의 초대나 도움으로 춤을 추는 게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공연을 계속,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다.

“모든 예술은 힘들다. 춤을 비롯해 예술가가 예술을 계속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안타까운 일이다. 밥벌이는 중요하다. 그런데,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공간이 필요하다. 공연을 하면 공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이 상당히 부족하다.”

두 가지, 즉 관심 부족과 공연 기회 부족이 큰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전통 춤이라고 해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이는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변화이자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춤과 댄스는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댄스는 기본 동작으로 만든 것이다. 스포츠와 닮은 면이다. 그렇지만 춤은 기본 동작에 내면의 세계를 담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가가는 게 그만큼 어렵다. 동작만 중시하는 것과 심리적인 것은 물론 관객 상황에 이르기까지 여러 생각이 필요한 춤은 다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루함과 난해함이 생긴다. 그래서 시간과 이해력이 필요하다. 이게 곧 교감이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의 意味

교감은 새로운 것일수록 깊게, 넓게, 빠르게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전통과 새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면서 소리꾼 장사익(張思翼, 1949~) 선생을 언급했다.

“교감을 늘이는 것, 이것은 모든 예술인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시선을 넓히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악이나 한국무용을 한다고 해도 정해져 있는 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시대에 맞춰가며 새로운 것, 다른 것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전통 분야에서는 아직 새로운 변화는 미약한 편이다. 공간의 틀을 고수하는 데서 벗어날 필요도 있는데, 그래서 공간에 자유를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공연할 때 보면, 옛 어르신들은 아무렇게나 몸을 움직이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오로지, 오로지 무대는 공연을 위한 공간이고, 마당은 마당놀이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나? 아니다. 고정돼 있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길은 어렵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장사익 선생은 ‘새로운 길’을 만든 소리꾼이다.

‘장사익’과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면서 곧장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떠올랐다. 내용과 형식이다. 우리는 예술과 공연에 있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해놓은 내용과 형식에 집중하는 게 일상이다. 물론 전통과 정통을 유지하고 ‘그 필요성’과 ‘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막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부적절한 것일 수도 있다.

새로운 것, 형식도 내용도 달라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클래식 공연의 경우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음악과 형식에 맞춘 것 외에 영화, 게임, 광고 등에 들어 있는 주제나 곡으로 공연이나 연주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하고 나자 김동순 선생은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틈새와 여백에 예술이 있다”

“92년 무렵 농악놀이를 하며 장구(한국 전통 음악에서 널리 사용하는 타악기며 장고(杖鼓/長鼓), 세요고(細腰鼓)로 부르기도 함)를 한창 치던 때다. 장구를 칠 때나 설장구(농악에서 장구재비가 혼자 나와 멋진 발림을 하며 가지가지 장구가락으로 솜씨를 보이는 놀이)를 할 때 궁채와 열채를 사용하기 좋다. 대개 장구를 칠 때 궁채는 왼손, 열채를 오른손으로 잡는데, 전통 악기는 장단에 여백이 많다. 여백, 그러니까 틈새를 채우는 것에 따라 장단은 차이가 나고 이게 곧 기예(技藝)가 달라진다.”

‘여백, 틈새, 기예’라는 낱말이 나오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장구재비가 장단을 길고 짧게 또는 느리고 빠르게 장단을 조절하면서 자유롭게 박자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 음악에 비하면 전통 음악은 내가 원하는 연주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전통 음악, 즉 국악은 빈틈을 채우면서 만들어간다. 연주로만 끝나지 않고 여기에 춤을 연결하면 무한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다. 연주자의 마음, 무대의 상황, 관객의 반응 등 주변에 있는 환경을 반영해 여백을 맞출 수 있다. 틈새에 예술이 있는 셈이다. 또 피리, 대금, 사물놀이 악기를 다루는데, 전통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춤을 출 수 있다. 춤과 악기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김동순 선생에게 춤 관련 활동은 어떻게 하고 지내는지 묻자 “개인적으로 활동한다”며 “프리랜서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춤을 추는 곳은 ‘시가(詩歌)흐르는서울’(대표 김기진, 회장 배정규) 프로그램이다. 연간 약 20회 출연한다. 이 외에 세종문화회관, 국회헌정기념관 등을 비롯해 관련 행사가 있을 때 참여 요청을 받거나 있을 아는 사람이 공연을 초대했을 때가 대부분이다. 전통 춤, 현대무용, 갈라콘서트, 플래시몹 등 다른 공연과 함께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전통 무시하는 인식 버려야”

인터뷰를 마칠 무렵이 되면서 춤을 추는 곳에 있는 아쉬움이나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이라는 점을 기억해 달라”며 “공통점을 찾아 더 나은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쉽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공통점 찾기’와 ‘함께 하기’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춤을 추는 ‘바닥’이 좁은 까닭에 서로 같은 것을 찾아 어울림을 갖는 게 쉽지 않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뭔가 새롭게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다른 예술 분야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특히 전통 춤 부문은 스승과 제자, 그 제자의 제자, 이런 형태로 돼 있어 새로운 것을 하는 게 쉽지 않다. 마음이 맞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깊은 속에 있는 말도 자연스럽고 편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김동순 선생은 전통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도 아쉬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구식 문화 예술이 우리 전통보다 더 좋고 우월하다는 인식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해외 무대로 나가서 보면, 그 반대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 전통을 무시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것을 알고, 느끼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잘 안 된다. 10~20세대에서 전통을 자주 접하지 못하면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전통을 이해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40~50세대다. 10~20이 40~60이 되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갖고 있을까 걱정이다.”

“전통문화는 세계화 대상 아니다”

우리 전통을 무시하는 경향이 크다는 말에 공감하고 동감한다. 주변 나라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일까. 이 궁금증을 김동순 선생은 일본, 태국, 중국을 예로 들어 짧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아울러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나왔으나 지금도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태국, 중국은 춤이든 음악이든 자신이 갖고 있는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이라고 하면 클래식을 생각한다. 전통 음악이나 춤이 아니라 서구의 음악과 춤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주변 나라에서 ‘너의 나라 전통이 무엇인지 보여줄 게 없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대중문화는 세계화로 볼 수 있지만, 전통문화는 세계화로 볼 수 없다.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특히 초중등학교에서부터 전통과 거의 만날 수 없어서 배움도 기회도 없다.”

김동순 선생은 퓨전국악처럼 국악도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조차도 듣지 않으면 잊고 또 잊을수록 점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새롭고 재미있는 전통 음악, 전통 춤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 축제와 예술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리의 춤과 음악은 상업화와 형식화가 강하지만 서구는, 축제에서 볼 수 있듯이,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축제 문화도 생각할 게 있다. 지역 문화일지라도 축제에 맞게 지역에 있는 문화예술인을 최대한 많이 초대해 하는 게 좋은데, 외부에서 초대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장터, 박람회 등 행사가 있을 때 지역에 있는 예술인을 키우고 대우해주는 게 빈약하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다”

계획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앞으로 10년 후 모습을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 모습을 잊지 않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무가 클수록 나뭇가지도 많아지고 큰 나무로 자라듯이 우리 춤도 그렇게 잘 자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교과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국악 등 문화예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전통과 함께 인성도 중요한 덕목인데, 전통이 이 같은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다.”


김동순
춤꾼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인 살풀이춤 이수자다. 이매방 선생 제자인 오미자 선생에게 살풀이를 배웠다. 1992년 무렵 탈춤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오미자 선생을 만나 여러 전통 춤을 만나는 과정에서 살풀이춤이 마음에 들어 살풀이 춤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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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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