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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사랑

"어른이 할 몫은 푸른 청춘이 마음껏 가지 펼치도록 믿어주고, 뻗어나갈 마당 마련해 주는 것"

아이의 학교는 아파트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베란다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다 들릴 정도이니 어지간한 학교 소식은 관심만 기울이면 다 알 수 있다. 아이들의 등하교 모습으로 교우관계도 대충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파트의 중학생들이 모두 그 학교에 다니니 이웃들도 다 고만고만한 학부모인 셈이다.

어느날 학부모 사이에서도 열성엄마로 소문이 난 한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엄마는 내 아이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 나와는 상관없이 노골적으로 경쟁 심리를 보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안 처지라 언니라 부르긴 하지만 이런 저런 거추장스런 관계를 싫어하는 나는, 일부러 조금 피하곤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에 잠깐 시간 돼? 잠깐 요 밑에서 볼까?”

대화의 내용 중 8~90프로가 학원 얘기이거나 진학 이야기라서 내심 피곤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또 무슨 궁금증이 그 언니를 유발시켰을까.

첫 질문은 요새 내 아이가 무슨 학원에 다니느냐였다. ‘그럼 그렇지’ 순순한 대꾸.

그리곤 유난히 뜸을 들인다.

“혹시 그거 알아? 자기 아이가…”

촉이 선다.

“언니, 혹시 남자 친구랑 가던가요?”

“알고 있었어?”

“팔짱을 끼고 가던가요, 어깨 동무를 하고 있던가요.. 아님 손 잡고 있었어요?”

이럴 땐 선수 치는 것이 능사. 그 언니는 경악을 금치 못하다 얼굴이 파리해진다.

“자긴.. 그게 이해가 돼? 아직 너무 이르지 않아? 자기가 그렇게 오픈 마인드인 줄 몰랐네.”

“언니, 전 그 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연애사를 뚜르르 꿰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할 일은 알아서 하는 친구예요. 자기 행동에 책임감도 있구요”

얼핏 예상은 했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한참 바쁜 시간에 사람을 불러내는 게 조금 불쾌했다. 나보다 더 놀라는 그 엄마를 안심시킨 뒤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보다 먼저 그 앙큼한 10대 커플은 내게도 걸린 적이 있다. 바로 코 앞이 집인데 그 남자친구는 아이를 집까지 매일 데려다 주고 있었으니, 어지간한 아파트 주민들이 다 알 터였다.

그 날도 차로 돌아 오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서 손을 잡고 가는 아이 둘을 보았다. 차창 문을 내리고,

“하이~!”

해줬다.

이 녀석들, 손도 안 풀고 씩 웃으며 인사한다. 집 앞에 주차하는데 둘이 도착했다. 그 남자 친구 녀석이 그제서야 내가 엄마인 줄 알고 정식으로 인사한다. 손은 풀지도 않고…

“그… 손은 좀 놓고 말하지?”

이 녀석들, 그저 씨익 웃는다.

요새 대부분의 아이들은 당당하고 자기의 주관이 뚜렷한 것 같다. 부모가 강제한다고 해서 들어먹을 나이도 아니고, 충분히 존중해주고 격려해주면 자신들이 해야 할 바를 판단할 만큼 이성적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가 자신의 길을 걷다가 엄연한 지름길을 알지만 둘러갈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사람을 이해도 하고 사랑도 하고 상처도 받고, 또 극복해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게 사람 사는 맛이니까. 물론 앞으로도 사랑할 많은 날들이 있겠지만, 앞 뒤 옆 따지지 않는 가장 순수할 수 있을 때가 지금이니까.. 그렇게 사랑과 자유를 먹고 커 가다 보면, 시를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클 수 있을 테니까…”


요새는 내가 자기의 연애사를 너무 재미있어 해서 오히려 귀찮아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연애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의외로 심각하지도 않다.

이별은 어른들처럼 칙칙하지 않고 굉장히 쿨한 편이다. 그걸 가지고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 떨수록 아이들은 음지로 숨을 것이고 거기에서 어른들이 상상하는 이상한 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그 청춘이 이쁘고 부럽다. 그 나이 때 사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해 보고 아플 때 아파봐야 사람냄새 나는 단단한 사람으로 건강하게 커 갈 수 있을 테니까.

그 푸른 청춘이 마음껏 가지를 펼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뻗어나갈 마당을 마련해 주는 것이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아이가 자신의 길을 걷다가 엄연한 지름길을 알지만 둘러갈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숲 속에 그루터기가 있으면 앉아 고독도 느껴보고, 다람쥐를 만나면 쫓아도 가 보고, 나무 둥치에 걸려 넘어져 생채기가 나 실망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 무엇보다 넘어진 옆 친구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사람으로 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사람을 이해도 하고 사랑도 하고 상처도 받고, 또 극복해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게 사람 사는 맛이니까. 물론 앞으로도 사랑할 많은 날들이 있겠지만, 앞 뒤 옆 따지지 않는 가장 순수할 수 있을 때가 지금이니까.. 그렇게 사랑과 자유를 먹고 커 가다 보면, 시를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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