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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신발

"마음을 여는 곳, 開心寺라 했다. 옹졸했던 내 마음도 환하게 열렸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절에 다녀오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함부로 의심한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졌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그 날 아기의 신발이 전해준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그 낡은 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잃어버린 아기 신발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을 사람들의 자애로운 불심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마음을 여는 곳, 開心寺라 했다. 옹졸했던 내 마음도 환하게 열렸다."

둘 다 학업 중에 결혼을 했기에 신혼살림은 참 곤궁했다.

대학 강사였던 남편은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이번에는 꼭 임용되겠지 기대했지만 매번 실망을 해야 했다. 우리가 무슨 호기로 결혼을 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다행히 심하게 싸운 기억은 없다.

그것은 지난 16년 동안도 마찬가지인데, 화를 잘 낼 줄 모르는 내 성격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풀 죽어 있는 어린 아내를 보면 매번 10분도 안되어 “미안해요”해 버리는 나이 많은 남편 덕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공부한 남편을 학원 강사로 내보낼 수 없어 조금이라도 공부를 덜 한 내가 나가기로 했다.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만삭이 될 때까지 학원으로, 개인 과외로, 산다 하는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둘 다 정서가 바닥났다 싶을 때마다 선택한 것은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그 때부터 전국의 조용한 사찰과 서원 등을 다니기 시작했다.

결혼하자마자 갖게 된 아이가 14개월 쯤 되었을 때였다.

아기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첫신발이라 없는 살림에 무리를 해서 편하고 예쁜 아기 신발을 사 신겼다.

새 신을 신기고 떠난 곳은 서산에 있는 개심사(開心寺). 나지막한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아기를 업고 오르기에도 괜찮았다. 무슨 정열에 그랬을까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속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으리라.

자그마한 사찰이 참 예뻤다. 초봄의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있는 아기자기 산사였다.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며 쏘다니는 아기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곳의 조용하고 아늑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절을 다 둘러보고 난 뒤 산을 내려가려고 아기를 둘러 업었다. 조심조심 30여 분을 내려왔다. 땀을 닦으며 ‘자, 내리자’하고 신을 신기려는데… 아뿔사.. 신이 없었다. 아기를 업느라 절 마루에 벗겨 놓고는 내려와 버린 것이었다. 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쳤다.

‘새로 산 예쁜 신을 어쩐다,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 가지고 가 버렸을 거야, 그냥 포기해?, 다시 올라 가 봐? ’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가 약간 불편한 남편을 다시 올라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안했다. 아기를 내려놓을 수도 없고 쩔쩔 매고 있으니 남편이 자기가 올라가 본단다.

힘들게 올라갔다가 신발이 없기라도 하면 그 실망감을 어쩌랴. 무엇보다 그렇게 예쁜 아기 새 신을 사람들이 그냥 놔두었겠나. 그냥 포기하자고 말렸다.

하지만 기어코 남편은 올라갔다. 남편도 산을 오르며 신발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더란다. 그래도 아기랑 아내가 풀이 죽어 있으니 해 보는 데까지 해야지 싶었단다.

남편이 다시 내려 오기까지 자책감과 대상도 없는 원망감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한 시간이 안 되어 땀을 흘리며 남편이 내려왔다. 한 손에 전리품인냥 아기 신을 들고서…

아기 신은 아기가 벗어 놓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단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절에 다녀오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함부로 의심한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졌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그 날 아기의 신발이 전해준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그 낡은 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잃어버린 아기 신발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을 사람들의 자애로운 불심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된다.

마음을 여는 곳, 開心寺라 했다. 옹졸했던 내 마음도 환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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