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님, 정상회담 恨 푸소서!”
"김영삼 대통령 영전에 남북통일 새날이 성큼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꽃을 바친다."
김영삼 前 대통령님, 못다한 남북정상회담의 한을 푸소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11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 한국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인물로 한국 정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향년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1993년 2월 25일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탄생시키고, 하나회 해체와 군대 인사 개혁, 금융실명제 시행,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 등 과감한 개혁을 실시했다. 또한 1995년부터 ‘세계화’ 정책을 내걸고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큰 업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이끈 문민정부는 성수대교 붕괴 등 수많은 대형참사를 맞으면서 풍파를 겪었고 후반기에는 측근 비리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경제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과오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만 5•16군사정변 이후 군인이 아닌 민간 대통령으로써 ‘민주주의의 성장통을 온몸으로 이겨낸 대통령’ 이라는 한국 정치사적 족적에 대한 평가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한국 민주화의 반세기를 되새기고 고인이 남긴 뜻을 기리며 정재계 인사와 일반인들의 조문행렬이 종일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무산된 1994년 남북정상회담
필자가 김영삼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깊이 남는 한이 있는데, 바로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었던 것이다. 1994년 6월 북핵문제 타결을 중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구체적으로 협의되고 있었다. 1994년 7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주 전인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뒤따른 김영삼 정부의 조문 거부로 남북정상회담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만약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기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아마도 한반도의 운명이 지금과는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정치적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쩌면 경제적 통일은 이뤘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특히 그 당시 중국의 개혁개방 흐름을 타고 한중수교(1992년 8월)가 막 이루어져 중국과의 협력이 증진되고 있었기에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압록강, 연해주 등 북중접경지역에서의 경제협력에 활로를 열어가는 새로운 동력을 얻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된 것이 김영삼 정부의 한으로 남을 뿐 아니라 한국인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실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이런 마음에 아쉬움이 더 큰 것이다.
나진과학기술대학 설립의 연기
그런데 이러한 국가 차원의 아쉬움뿐만 아니라 필자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아쉬움이 한 가지 더 있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연변과기대와의 관련 사항인데 숨은 스토리를 공개하고자 한다. 1992년 개교 이후 중국 공산주의체제 하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연변과학기술대학이 후속 프로젝트로 나진지역에 남북 합작 교육사업인 나진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기본적인 업무를 추진(1993년 착수)하고 있었다.
특히 김영삼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준비와 궤를 같이하면서 북한 뿐 아니라 남한 정부에서도 승인을 받아 94년 봄부터 공사 준비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학교 부지 선정부터 부지조성 마스터플랜을 입안한 후 6월경 착공할 계획이었으며, 당시 H사 J회장이 이와같은 남북통일 역사발전을 위해 흔쾌히 건설중장비 10대 가량(불도저, 포크레인, 덤프트럭, 건축용 크레인 등)을 지원해 주셔서 포항에서 선적해 나진항으로 보내 늦어도 7월 중에는 공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를 시작하려고 하는 준비단계의 막바지 시점인 7월초,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이 프로젝트는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특히 김일성 주석의 문상기간인 만 3년 동안 전혀 진척하지 못했으며, 그 동안 기증 받은 중장비들은 북한 내에서 유야무야 흩어져버렸고 겨우 남겨둔 불도저, 포크레인, 덤프트럭 각 1대씩만 연변과기대로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문상기간이 끝난 후 김진경 연변과기대 총장께서 이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코자 북한에 출입했다가 급기야 국가체제전복음모죄로 조사받는 과정에 40여일간 구금, 고문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중에 추방령 형태로 중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이때 김진경 총장(미국시민권자) 구명운동을 위해 미국 조야 뿐만 아니라 UN, 중국 지도부에서도 강력한 항의를 하는 등 세계적인 핫이슈가 되었었다. 당시 나선경제특구 북한 측 책임자였던 김정우 위원장이 북한 신정부에 의해 축출되면서 그의 파트너였던 김진경 총장도 의심을 샀던 것이다.
그 후 3년이 경과하는 동안, 김진경 총장은 북한에서 당한 고초를 일절 문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 고아들을 위해 먹을 것, 입을 것을 계속 지원해 주는 등 대량 기아사태에 놓여있던 북한 주민을 위해 민족애를 불태웠던게 북한 지도부를 감동시킨 사례가 되었다.
그런 과정에 2001년 1월 중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공식 방문시, 국제도시로 급성장한 상해 푸동지구를 방문했을때 경천동지할 만큼 변한 중국의 경제발전상을 실감하고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북한 내 경제개선 조치와 더불어 이에 따른 국제화 인력양성을 위한 특단의 프로젝트를 김진경 총장에게 요청하는 조취를 취했다. 그것이 바로 중국 공산주의체제에서 성공한 연변과기대와 같은 국제대학을 평양에도 세워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결과적으로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되었던 나진과학기술대학 건립 프로젝트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나 남북합작교육사업의 실질적인 모델로 등장했다. 2001년 3월 북한 정부 교육성의 사업 허가와 동년 6월 한국 통일부의 사업 승인, 2002년 6월 착공에 들어간지 만 7년 만인 2009년 9월 16일 준공식 및 개교 행사를 갖고 2010년 10월 개학해 올해 만 5년에 이른다.
故 김영삼 대통령을 보내드리며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 뉴스를 보며 지난 과정이 회상되었다. 1993년 당시 김영삼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더라면 한민족 역사에 새로운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겠나하는 회한과 아쉬움을 느끼는 바이다.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큰 뜻을 갖고 희망하는 것이 있다. 승부사적 기질이 농후한 김영삼 대통령의 못다 이룬 남북정상회담의 꿈을 그분 못지않게 담대한 용기와 진정성을 갖고 한반도 통일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남북한 동질성 회복 및 경제공동체 조성에 기여하는 등 새로운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남북 간에 진정한 화해와 생산적인 평화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2016년에는 기필코 남북정상회담의 대로를 열어 주십사 하는 바람이 크다.
1948년 한반도에서 두 국가로 분단된 이래 2000년 6월 김대중 정부 들어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2007년 노무현 정부 마지막 시즌에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런 기초 위에 미국, 중국 뿐 아니라 주변국가들이 모두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정책을 성원하고 기대를 걸고 있는 최근의 국제 정세 흐름을 감안할 때 국제외교의 달인이요 국내 보수층 기반의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그 임기 중에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시켜 한민족 역사의 새날을 맞이하는 신지평(新地平)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온 마음으로 소망한다.
고인이 남기신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당부가 국내의 여·야와 보수·진보를 망라하는 국력 신장의 기본 정신이 되고, 나아가 국외적으로 국제정세의 갈등과 각축을 뛰어넘어 온누리에 한민족의 빛을 발하는 ‘새로운 역사 점화’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김영삼 대통령의 영전에 남북통일의 새날이 성큼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꽃을 바친다.
이승률
이승률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은 연변과학기술대학과 평양과학기술대학의 대외부총장을 역임하고 있고, (사)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과 (사)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동북아 전문가로서 각종 국제포럼 및 한반도 통일 사역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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