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은 잘못됐다”
"트렉스타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본질은 ‘인류’에게 편함, 행복, 건강을 주기 위한 신발을 만드는 것이다. ‘일류(一流)’도 중요하지만, ‘인류(人類)’에게 기여해야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떳떳할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
“세상의 모든 것은 잘못됐다”
대한민국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산책’이 ‘별’을 만나 새로운 이름인 ‘트렉스타(TreckSta)’가 태어났다. 트렉스타는 토종 아웃도어(Outdoor) 브랜드인 ‘트렉스타’이자 회사인 (주)트렉스타(대표 권동칠) 이름이기도 하다. 가벼운 등산이나 산책의 뜻인 ‘트레킹(Tracking)’과 산속에서 길잡이가 되는 ‘별’(Star)을 합쳐서 만든 말이다. 산행의 길잡이가 되는 별이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트렉스타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진정한 차별화를 만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트렉스타는 무겁고 딱딱한 가죽 등산화를 당연하게 생각하던 때에 무겁던 트레킹(Trekking) 등산화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인 ‘경(輕)등산화’를 최초로 개발했다. 2011년부터는 기능성 전투화를 만들어 전군(全軍)에 납품하고 있는 한국 브랜드다. ‘일류’는 물론 ‘인류’를 위한 기업을 지향하는 트렉스타는 ‘혁신, 글로벌화, 휴머니즘’ 등 경영 전략에 따라 도전과 도약을 반복하며 최고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손대지 않아 자유롭다
트렉스타는 전 세계 아웃도어 신발 매출 기준으로 ‘아시아 1위’, ‘아시아 시장 점유율 1위’, ‘세계 시장 14위’ 기업이다. 아시아 시장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세계에서 가장 편안한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2015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아웃도어 스포츠 용품 박람회인 ‘2015 국제스포츠용품박람회’(ISPO, International Trade Show for Sports Equipment and Fashion)에서 핸즈프리 신발로 ‘올해의 아시아 제품 대상’(하이킹 & 트레킹화 부문)과 ‘황금상’(Gold Winner)을 동시에 수상했다.
ISPO는 1970년부터 시작한 세계 최대 스포츠 용품 박람회다. 2014년에는 50개 국가에서 2500개 업체가 참여하고 8만 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매년 전시회에 참가한 브랜드 중 최고 제품을 가리는 시상식(ISPO AWRARD)을 진행한다. 황금상은 전 세계 브랜드 중 각 부문의 최고상이다.
트렉스타가 내놓은 기술과 제품은 사람을 위한 것에 초점을 둔다. 대표적인 기술은 ‘올해의 제품상’과 ‘황금상’을 받은 핸즈프리시스템(Hands Free System)이다. 한 손으로 신발의 끈을 조이는 기존 기술보다 더 발전한 기술인 핸즈프리는 손을 전혀 쓰지 않고 신고 벗을 수 있는 기술을 적용했다. 핸즈프리 신발은 2014년 10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핸즈프리 신기술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대외에 알렸다.
남이 가지 않는 길, 남이 하지 않는 생각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남들이 두려워하는 도전을 하다 보니 더 큰 트렉스타가 되었습니다. 지식경제부 주최 2010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경영 부문 대통령상 수상, 또 하나의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가 되겠습니다. 트렉스타!”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에게 전화하면 얼마 전까지 들을 수 있었던 휴대폰 컬러링이다. 트렉스타가 지향하는 가치이자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트렉스타가 토종 브랜드로 성장해 ‘아사아 시장 점유율 1위, 세계 14위’라는 자부심과 성과를 얻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노력과 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명품 브랜드,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등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수식어도 트렉스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다. 전문 등산화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한 후 약 6년 만에 국내 1위 브랜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은 50%에 가까운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등 세계 20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동호실업·성호실업·하이퍼그립·트렉스타
트렉스타는 1988년 8월 8일 동호실업에서 출발했다. 이후 1991년 10월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상호를 (주)성호실업으로 바꿨다. 2005년 11월 (주)하이퍼그립으로 법인 상호를 변경한 후 2008년 1월 (주)트렉스타와 (주)하이퍼그립을 합병해 단독 법인인 (주)트렉스타를 만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권동칠 대표는 트렉스타 전신(前身)인 동호실업부터 시작해 지금의 트렉스타까지 쉬지 않고 회사를 이끌고 있다. 트렉스타는 권 대표가 신발에 쏟은 열정과 눈물과 노력과 도전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 1955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동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부산에 있는 신발 업체 (주)세원에서 신발과 인연을 맺었다.
권 대표는 당시 휴일을 반납하며 일에 몰두할 만큼 열정이 많았다. 덕분에 입사 6년 만에 회사 총책임자 맡을 만큼 ‘악바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입사 6년에 최고가 되었듯 회사 설립 후 6년 만에 국내 1위 브랜드가 된 게 우연이 아닌 인연이자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권 대표는 새로운 신발을 만들어 차별화로 승부하겠다고 결심하고 1988년 동호실업을 설립했다. 당시 딱딱한 신발 대신 부드러운 신발에 인라인스케이트를 장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 큰 관심을 받으면서 회사가 급성장했다.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1997년에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주)트렉스타를 별도로 설립해 아웃도어 신발과 의류 등을 선보였다. 특히 트렉스타 신발창은 지난 2006년 세계 2위 점유율을 달성했다. 라푸마, 에이글 등을 비롯해 세계 유명 브랜드를 만드는 30여 개 기업이 트렉스타 신발창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권 대표는 1996년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대통령상을 시작으로 성공한 경영인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MBC 『성공시대』, KBS 『신화창조의 비밀』, KBS 라디오 『엄길청의 성공시대』, OBS 『박명수가 만난 CEO』, KBS 『아침마당』, KBS 『K1 기업열전』, KBS 『인생노트, 길』 등 성공 이야기를 다루는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말 그대로 ‘성공 스타’가 됐다. 권 대표는 물론 (주)트렉스타도 스타다. 금탑산업훈장, 부산산업대상, 7000만 달러 수출탑 및 국무총리상, 대한민국디자인대상 디자인경영 부문 대통령상, 한국산업기술혁신대상, 부산디자인경영인상, 부산산업대상, 북경 2009 ISPO CHINA 대상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2018년 1월 8일(월)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주)트렉스타 본사에서 권동칠 대표를 만났다. 유럽, 중국 등 해외 출장이 잦아 평상시에는 일정 잡는 게 쉽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일정이 맞아 만날 수 있었다.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길’을 찾다
▲오랜만에 인사드린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책장을 보니 『완주의 조건, 열정으로 갈아신어라』는 책도 출간하셨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가 쓴 『오리지널스』(Originals)도 봤는데, 최근 읽고 있는 책이다.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책이다. 창업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웃도어 업계의 일반적인 흐름에 순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트렉스타와 함께 성장하며 아웃도어 업계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잘못됐다’는 슬로건은 특히 주목을 끈다.
세계 아웃도어 브랜드 ‘최고’를 꿈꾸면서 생각했던 게 ‘세상의 모든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신발은 잘못됐다, 고로 나는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외국의 유명 브랜드와 비교하면, 트렉스타는 뒤늦게 회사를 설립한 작은 업체였고, 그것도 한국에서 첫걸음을 시작하는 회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세계 시장에 진출한 대형 업체와 경쟁하려면 뭔가 다르지 않으면 안 됐다.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길’을 찾아야 했다. 그 길은, 최소한, 기존의 방식과 다르고 또 새로운 것이어야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잘못됐다는 생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기기 위한 전략이자 앞설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전략인 셈이다. 가벼운 등산화인 ‘경등산화’부터 시작해 나만을 위한 맞춤 신발 ‘네스핏’,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 ‘하이퍼그립’(하이퍼그립 아이스락 기술), 손을 대지 않고 신고 벗을 수 있는 ‘핸즈프리’ 등이 모두 이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신발은 사람의 삶을 담고 닮는다”
▲철학적 사유, 이런 형태의 물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신발 산업은 영원하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중소 신발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신발 산업이 위기를 맞던 1990년대 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신발 산업은 영원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작한 게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신발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발은 사람의 삶을 담고 닮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신발은 그 사람이 어디를 자주 가는지, 어떤 생활 습관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패션 제품처럼 멋진 신발을 선호하는 사람 중에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고 편하게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본연의 목적을 잃었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신발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했나?
신발 본연의 목적을 살리는 신발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후부터 사람의 발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길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의 발끝을 살피는 것은 예사였다. 사람을 만날 때도 신발을 먼저 살폈다. 어떤 사람은 신발은 그만 보고 얼굴을 봐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발 냄새를 향기롭게 느낄 만큼 열정을 쏟았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을 ‘신발 보기’에서 찾으려 했던 것인데, 해법은 무엇이었나?
신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발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의 발바닥을 보호하고 건강까지 지킬 수 있는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신발을 만들 수 있었다.
2006년에는 곰발바닥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유리 섬유를 넣어 얼음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아이스그립 기술’을 적용한 신발창을 개발했다. 라푸마, 에이글 등 30여 개의 글로벌 유명 브랜드가 아이스그립 신발창을 구입했다. 이 신발창으로 2006년 세계 2위 점유율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발에 대한 예의를 위한 기술, ‘네스핏’
▲개인적으로 ‘사람을 위한 기술’, ‘사람을 위한 신발’이라는 생각과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든다. 가볍게 만든 경등산화, 사람의 발에 맞춰 만든 네스핏(NESTFIT) 기술 등은 이 같은 생각을 강조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네스핏은 ‘발에 대한 예의를 현실화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신발보다 발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새로 심어줬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경등산화는 등산에 필요한 기능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를 빼고 만든 제품이다. ‘편하고 가볍고 튼튼한’ 신발이라는 기본이자 핵심 기능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통해 트렉스타는 경등산화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과 높은 시장점유율 차지할 수 있었다.
네스핏은 특정 종류의 신발이 아닌 편한 신발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또 코브라 제품에 적용한 보아기술(Boa Technology)은 신발 끈 대신 다이얼을 돌려 신발을 묶고 풀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현실화한 것들이다.
네스핏은 새의 둥지처럼 발을 감싸주는 신발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네스핏은 ‘둥지(Nest)’라는 말과 ‘꼭 맞는 착용감 기술(Fit Technology’을 합성한 말인데, ‘발의 외침을 들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다. 네스핏 기술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잘못됐다’는 생각에 ‘창의성’이 어우러져 나온 것이다. ‘틀려야 맞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남과 다른 색깔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낳은 작품이다. 틀려야 맞다는 생각은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모티브인 셈이다.
▲네스핏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깼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한 걸음을 걸을 때 발이 받는 무게는 56kg에서 90kg에 이른다. 하루 동안의 누적 무게는 1000톤에 달한다. 평생 누적되면 무려 2500만 톤이다. 네스핏은 어떤 길을 만나도 맨발처럼 편안한 신발을 만들겠다는 생각의 산물이다. 다른 회사의 트레킹화와 비교할 경우 발이 받는 압력은 23%, 근육 피로는 31%를 줄여준다.
대부분의 신발, 그러니까 대략 95%는 자연 상태의 발과 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신발에 발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네스핏은 신발이 발에 맞추는 기술을 적용했다. 네스핏은 2만 명이 넘는 사람의 발을 3D로 스캔하고 발의 굴곡에 대한 수치를 수집, 연구해 실제 발에 대한 표준 값을 결정해 개발했기 때문에 발모양이 달라도 신는 사람에 따라 신발이 발에 맞추게 된다.
양손을 자유롭게 하는 기술, ‘핸즈프리’
▲손을 쓰지 않고 신발 끈을 묶고 풀 수 있는 핸즈프리는 놀라움과 함께 기막힌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 신발이다. 어떻게 탄생했나?
핸즈프리는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한 끝에 개발한 아이디어 제품이다. 한국은 좌식 문화다. 그런 만큼 한국 사람은 신발을 신고 벗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특히 양손에 짐을 들었거나 길에서 신발 끈이 풀렸을 때,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엎드려 신발 끈을 다시 묶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그러다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끈을 묶거나 푸는 시간까지 아껴주는 신발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핸즈프리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핸즈프리 제품을 발표하기까지 약 3년이 걸렸고 20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 사람이 길을 걸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각도, 발과 지면의 경사각에 따른 충격력 등을 계산해 1000켤레가 넘는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기술이라며 지치기 시작했다. 이럴 때마다 연구진에게 했던 말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야 발이 편안해진다’며 3년 동안 연구를 이어갔다.
핸즈프리 신발은 손을 쓰지 않고도 발로 발뒤꿈치 아래쪽 장치를 밀면 자동으로 신발 끈이 감기고, 다른 발로 신발 뒤 버튼을 누르면 끈이 자동으로 풀리는 신기술을 적용한 신발이다. 이 제품은 독일에서 개최한 아웃도어 박람회인 ‘2015 ISPO’에서 ‘올해의 아시아 제품 대상’과 ‘황금상’을 받았다.
기술 검증 등 차별화로 세계시장 진출
▲해외에 진출하는 등 세계시장으로 가는 길도 넓히고 있다. 어떤 상황인가?
트렉스타는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아시아 아웃도어 브랜드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와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아웃도어의 본고장인 유럽에도 진출했다. 또 캐나다, 페루,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도미니카 등 북미와 남미에서도 트렉스타를 만날 수 있다. 98년 이후 신규 계약은 연평균 약 27%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총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이후 10%를 웃돌고 있다.
트렉스타는 1994년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기술력에 투자하고, 차별화한 신발 제품으로 유럽, 미국, 아시아의 유명 아웃도어 전시회에 참여했다. 매장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해외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 유통·판매자)와 직접 계약을 진행한다. 특히 기술로 검증을 마친 제품만 판매하는 차별화 방식으로 글로벌 마케팅을 이용하고 있다.
▲기술 중심의 마케팅으로 어떤 성과를 얻었나?
소비자가 좋은 평가를 해줬다. 혁신적인 기술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보다 편안한 아웃도어 활동에 기여한 것을 인정해줬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뽑은 2015 한국소비자만족지수’에서 아웃도어 등산화 부문 1위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친인간적인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술의 제품 개발로 아웃도어 브랜드 최초로 14년 연속 한국서비스품질 우수기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는 아웃도어 브랜드 기업 중 유일하다. 소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인데,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긍정적 평가는 것은 가장 좋은 마케팅 성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 열쇠는 ‘창의적 마인드’와 ‘열정’
▲트렉스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임직원의 ‘창의적 마인드’를 성공의 열쇠로 손꼽는다. 트렉스타는 20년 넘게 매달 1권씩 독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창의력을 키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월 ‘신바람 나는 행사’를 빠지지 않고 치른다.
신바람 행사는 연극, 영화, 야구 관람 등 다양하다. 독서와 신바람 행사 같은 활동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활동은 결과적으로 제품의 질을 높이고 독창적이고 독특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해준다.
열정이 많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예전에, 대략 2010년이나 2011년 즈음인 것 같은데,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아들은 내가 왜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물었는데, 곧장 답변을 하지 못했다. 자신을 돌아보니 잘 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나 주변을 보면, 소위 ‘잘 나가는 곳’에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곧바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강한 열정이 있다. 뭘 하든지 열정을 갖고 도전하기 때문에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들에게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열정으로 이룩한 오늘의 트렉스타가 있다’는 회신을 보냈다.
성공을 담은 숫자 ‘8(八)’
▲창립기념일이 8월 8일이고 다른 데에도 숫자 ‘8(八)’이 들어간 게 많은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과 좌절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팔팔하다’는 뜻과 ‘사통팔달(四通八達)’도 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8자를 무척 좋아했다. 8자를 좋아하는 게 팔자(八字)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어에 ‘쯔파’라는 말이 있는데, 100년에 한 번 오는 길일(吉日)을 뜻한다. 중국인들은 또 ‘돈을 번다’는 의미의 ‘파차이(發財)’의 ‘파’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8을 좋아한다. 현재 회사가 있는 곳은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이지만, 여기로 오기 전에는 사상구 주례동이었다. 이곳 주소가 888번지다. 트렉스타 전신인 동호실업을 설립한 날짜도 8자와 인연이 깊다. 동호실업은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8분에 설립했다. 이 날이 100년에 한 번 오는 길일인 ‘쯔파’다. 중국법인도 1995년 8월 8일에 설립했다.
▲8자를 많이 접한 것처럼 창업 후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창업 후 15~16년 정도는 급성장을 했다. 겁날 게 없을 정도로 성장을 이뤘다. 신발 밑창인 아웃 솔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완제품 시장에서도 남과 다른 기술을 확보했다. 이때부터 글로벌 기업이 트렉스타에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4년 독자 브랜드인 경등산화를 생산하면서 소위 ‘대박’이 터졌다. 입소문을 통해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빠르게 퍼지면서 3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을 65%까지 올릴 수 있었다.
성공과 좌절의 체험장, 인라인스케이트
▲그러나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90년대 중후반부터 몇 년 동안 신발산업은 극심한 침체기에 진입했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는 업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렉스타는 인라인 스케이트에 경량화 기술을 적용해 큰 인기를 끌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주문자생산방식(OEM)과 자체 브랜드를 통해 2,45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인라인스케이트의 열풍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수출 규모는 1억 달러였는데, 국내와 해외 가격을 맞춰 가격 질서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내시장을 지켜야 해외시장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법은 가격 조정뿐이었다. 이로 인해 생긴 현금 손해는 250억 원에 달한다. 전 세계적인 인라인 인기는 성공도 안겨줬지만 위기를 불러온 것도 한순간이었다.
또 장인어른을 포함해 20명의 임원을 포함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850여 명이던 국내 직원도 300여 명으로 줄였다. 2년 동안 월급은 받지도 못했고 업무비도 개인 경비로 해결했다. 차량도 없애고 지하철을 이용했다. 주말에도 근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시는 어려운 시기였고 브랜드 사업 때문에 내수에 집중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생존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3000억 원 규모가 돼야 하는데 성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중국의 경우 2010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인건비가 급상승했다. 당시 대략 85% 정도 오른 것 같다. 또 주문도 불규칙해서 손해가 컸는데, 대략 350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트렉스타는 브랜드 위축 없이 성장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처럼 브랜드에 대한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아 국내에서 1위, 세계적으로는 16위가 됐다. 지금도 트렉스타라는 브랜드는 좋은 인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좋은 브랜드’라는 인식은 성장은 물론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 믿고 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직원 구조조정을 할 때다. 사실 어려움에 직면한 후 1년 동안은 구조조정은 생각만 했을 뿐 실천을 하지 못했다. 함께 고통을 나누며 참아보자는 말을 하며 견뎠다.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들을 내보내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늦어지면서 300억 원의 손해가 생기는 등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어려움이 처했을 때도 그랬지만, 특히 임직원을 내보낼 때 많이 울었다. 이들은 모두 동고동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 확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
‘열정의 확산’, 회사 경영을 하는 데 있어 열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열정을 갖고 있다면 창의성, 기술력 등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정직, 화합, 자율을 강조한다. 정직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준다.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업무에 전력투구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직하지 않은 직원은 예외 없이 해고하는 게 원칙이다. 또 화합을 하지 못하는 직원도 마찬가지다.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직원 간에 갈등이 있을 경우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양쪽을 모두 해고한다. 전쟁에서도 병사의 숫자보다 단합과 단결이 훨씬 더 중요하다. 승전을 위한 핵심 요건이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나 시비를 가리는 것은 결국 패인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리고 자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간섭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율성을 준다고 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기술도 중요하다. 특히 기술은 생각에서 나온다. 신발 업체의 특성상 접착, 봉제 등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이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트렉스타가 말하는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을 기술이라고 본다. 트렉스타는 어떤 기술이든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생각이 미치지 못해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늘 새로운 것을 보라고 강조한다.
‘一流’보다 ‘人類’에 기여하는 기업
▲트렉스타가 앞으로 어떤 기업이 되기를 희망하는가?
트렉스타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본질은 ‘인류’에게 편함, 행복, 건강을 주기 위한 신발을 만드는 것이다. ‘일류(一流)’도 중요하지만, ‘인류(人類)’에게 기여해야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떳떳할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하는 게 취미고 열정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취미와 열정을 바탕으로 트렉스타 본질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보다 기능적인 신발을 만들어 인류의 건강 증진과 수명연장에 기여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신발 회사, 그리고 그 결과로 최고 수준의 복지 회사를 건설한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공시대 출연진 중 70%가 사업을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만큼 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데, 그래서 성공은 성공으로 끝나면 안 된다. 아무리 튼실한 기업도 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년이면 충분하다. 설령 폐업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히 생명연장, 즉 먹고 사는 것일 뿐이다. 비즈니스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기 때문에 관리를 하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썩어버린다.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재벌도 조금만 방심하고 자만을 부리면 순식간에 망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비즈니스는 수없이 많은 변인(變因)의 연속이다. 공부는 답이 있지만 비즈니스는 정답이 없다. 오답인지 정답인지 모르기 때문에 망설이고 고민한다. 트렉스타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다.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인류를 향한 궁극적인 목표와 본질을 위해 트렉스타가 갖고 있는 생명력을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권동칠
1955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출생했다. 1982년 동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주)세원 해외영업부에 입사하면서 신발과 인연을 맺었다. 1988년 동호실업(트렉스타 전신)을 창업한 후 1994년 ‘TrekSta’(트렉스타)를 설립하면서 자체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1995년 중국 (유)천진실업을 설립했으며 현재 (주)트렉스타 대표이사 사장이다. 1996년 자랑스런 신한국인상(대통령상) 수상, 1997년 금탑산업훈장(대통령상) 수훈, 1998년 부산산업대상(부산상공회의소) 기술상, 1999년 7000만불 수출탑, 2003년 지역을 빛낸 군민상(예천군수), 2005년 자랑스런동아인상(동아대학교 총장), 2010년 제1회 부산디자인상 대상, 2010년 제12회 대한민국 디자인대상(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신발산업협회 회장, 부산울산벤처기업협회 임원(고문), 부산디자인센터 이사, 제20대 상공회의소 의원, 신발CEO포럼 회장 등을 지냈다. 성공적인 기업 경영 이야기는 MBC, KBS, CBS 등 방송 출연을 비롯해 잡지, 신문 등 여러 매체에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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