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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모르는 覇道政治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어찌 보면 관군의 승리가 아니라 의병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그 긴 전쟁은 끝이 나고, 그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백성이 죽는 희생이 겪었다. 그 죽음과 희생 위에 선조는 살아남았고, 선조는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왜적을 죽이면 양민으로 신분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면천법을 아예 없던 일로 폐지해 버렸다. 오늘의 우리 정부와 그 방법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역사는 선조를 가장 치욕적이고 무능한 왕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거짓이 없다.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한, 사실 그대로 되풀이되며 진실은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이 나라 현 정권의 모습이 임진왜란 당시의 조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국민은 경제난으로 힘들어 하는데, 현 정권의 위정자들은 계파 싸움이나 일삼고, 선조와 대비되는 대통령은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소통이 금물(?)인 현 정부안에서는 바른 말(직언) 하는 관료는 쳐내고 가신들에게 둘러싸여 역사를 왜곡하고 바꾸려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거짓이 없다.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한, 사실 그대로 되풀이되며 진실은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이 나라 현 정권의 모습이 임진왜란 당시의 조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국민은 경제난으로 힘들어 하는데, 현 정권의 위정자들은 계파 싸움이나 일삼고, 선조와 대비되는 대통령은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소통이 금물(?)인 현 정부안에서는 바른 말(직언) 하는 관료는 쳐내고 가신들에게 둘러싸여 역사를 왜곡하고 바꾸려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패도정치(覇道政治)

歷史를 통해 바라본 오늘의 한국

이부규 정신개혁시민협의회 상임대표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어찌 보면 관군의 승리가 아니라 의병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그로부터 44년 후에 조선(朝鮮)은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게 되는데 그 때는 의병 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던 것이 의문이었다.

필자는 이것이 궁금했었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를 求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의병(義兵)들이 왜 병자호란 때에는 나서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왕(王)은 백성을 그냥 방치한체 황급히 의주로 도망친 것이다. 이때 王 선조가 머물던 경복궁은 왜군(倭軍)이 아닌 조선의 백성들에 의해 불에 타는 치욕을 겪게 되었다. 백성들은 전쟁을 막지 못한 무능한 조정에 분노했고, 싸워보지도 않고 의주로 도망간 선조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족쇄와도 같은 신분제도에 분노해 경복궁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의주로 도피한 선조는 명나라에 망명을 요청했다. 이는 자신과 비빈들과 가신들만 살기 위해 백성과 조국의 산하를 버리고 명나라에 복속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 요청을 명나라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저의를 의심했고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명나라는 선조를 요동의 빈 관아에 유폐하려고까지 했으며, 그러한 낌새를 눈치 챈 선조는 자신을 무시한 명나라에 망명을 하기 보다는 왜(倭)나라와 전쟁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유부단한 그에게는 내키지 않는 결정이었다.

왕(王)과 조정 중신들은 이렇게 도망을 쳤지만, 백성(義民)은 나라를 지켜냈다. 이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義兵이 일어나 나라를 지킨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의병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노비(奴婢)들로 하여금 왜군(倭軍)의 수급(首級)을 가져오면 양민으로 회복시켜 주겠다는 면천법(免賤法)이 선포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단적으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왜군의 수급을 하나만 들고 오면, 그 지긋지긋한 천민(賤民)에서 벗어나 양민(良民)이 될 수 있다는데 의병을 마다할 노비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래서, 만약에 그 제도가 제대로 시행이 됐다면, 임진왜란은 짧게 봐서는 국가적 불행이었지만, 길게 봐서는 조선이 계급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우선 급한 불을 껐다고 생각한 선조는 이 약속을 철저히 외면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들까지 하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 영웅으로 인정한 의병장 김덕령을 역적이라는 죄목을 씌워 처형(處刑)했는가 하면, 급기야는 이순신 장군마저 역도(逆徒)로 몰아 제거의 대상이 삼았다.

선조실록(宣祖實錄)을 보면, 선조는 이순신을 늘 의심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까닭은 전쟁이 끝나면 어차피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죽음을 피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식자도 있다.

그러한 전쟁 중에도 당파 싸움을 일삼던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남인으로 분류하고, 서인의 부추김을 받은 선조는 이순신을 소환하여 한 달간 모진 고문을 가하고 결국은 백의종군까지 시키지 않았던가.

이 나라는 목숨을 건 전쟁 영웅을 죽이거나 제거하고, 권력 독점욕으로 당파 싸움과 이간질만 일삼는 간신배만 남는 조정이 된 것이다. 작금의 이 나라 대한민국의 현 정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비교가 된다.

역사는 거짓이 없다.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한, 사실 그대로 되풀이되며 진실은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이 나라 현 정권의 모습이 임진왜란 당시의 조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국민은 경제난으로 힘들어 하는데, 현 정권의 위정자들은 계파 싸움이나 일삼고, 선조와 대비되는 대통령은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소통이 금물(?)인 현 정부안에서는 바른 말(직언) 하는 관료는 쳐내고 가신들에게 둘러싸여 역사를 왜곡하고 바꾸려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대신에 등장한 원균이 한산도와 칠천도에서 왜군에게 대패해 조선 수군(水軍)은 괴멸된다. 그러자 선조는 하는 수 없이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내려 보내고, 수군은 이제 끝났다고 판단하여 수군 해체령까지 내린다.

이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으니, 이 배로 사력을 다해 싸우면 능히 왜적을 무찌를 수 있다”는 장계를 올려 진언했다. 오늘날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국에 우리나라 현 정부에는 이순신 장군 같은 충신이 보이지 않고. 자천 타천의 간신배들만 차고 넘치니, 나라 걱정하는 국민의 탄식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임진왜란, 그 긴 전쟁은 끝이 나고, 그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백성이 죽는 희생이 겪었다. 그 죽음과 희생 위에 선조는 살아남았고, 선조는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왜적을 죽이면 양민으로 신분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면천법을 아예 없던 일로 폐지해 버렸다. 오늘의 우리 정부와 그 방법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역사는 선조를 가장 치욕적이고 무능한 왕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44년 후에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그러나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병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백성들은 왕을 믿지 않았고, 조정의 간신배들도 믿지 않았고, 권세가들에게 더 이상 속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라 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경복궁이나 청와대나, 조정이나 여의도나, 지루한 당파 계파 싸움이나, 출세 지향적 경쟁으로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위정자들이, 외세에 이리 저리 휘둘리며 외세의 눈치를 살피는 사대주의적이며, 외세 의존적인 정객들의 한심한 작태에 국민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자주국방, 민중의 지팡이, 이 구호는 어디에 숨겨 버렸나? 이제 우리의 현실을 자각한 국민이 용기 있게 나서야 한다. 후손의 미래를 위해…….

이부규(李子賢)
1940년 1월 19일 출생.
한국청년학생총연맹 총위원장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위원
한구사회문제연구소 사무국장
한국정치범동지회 부설 인권문문제연구소 이사장 겸 공동대표
겨러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
동학민족통일회 의장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
전국시민단체연합(NGO)연합 상임공동대표
사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
전국공권력피해자연합 상임의장
국회국정감사감시NGO모니터단 공동단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호주제폐지반대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
한반도평화와통일을위한국회의원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한국나눔운동중앙회 상임의장
법률소비자연맹 공동대표
대한민국민주유공자(국가보훈처)
천도교 선도사
정신개혁시민협의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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