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문학 시각으로 봐야”
최장현, “평화의 싹은 인간적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생긴다”
최장현 평화 강사 인터뷰
“평화의 싹은 인간적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생긴다”
2007년 북한을 탈출한 최장현(만31) 씨는 평화를 알리는 평화 강사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학생이지만 현재는 휴학 상태다.
평화강사는 우양재단에서 진행하는 ‘사회환원남북청년’이라는 사업 중 한 분야다. 우양재단이 평화국가 수립을 위한 기획 강연회 형태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최 씨는 이 중 평화강사 부문에 참여하고 있다.
우양재단의 사회환원남북청년사업은 남북을 아우르는 사회 환원을 만들어가는 닮고 싶은 우양청년의 모습을 찾기 위해 시작했다. 이 사업은 1983년 소규모로 시작한 장학금 지원 사업이 뿌리다.
지금은 매 학기 약 100여 명의 학생들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지원대상도 남한 대학생에서 탈북 대학생까지 확대해 통일 후 조화로운 남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몰두하는 미래의 남북한 청년 사업으로 커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 씨는 우양재단에서 4년 넘게 평화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다산콜센터, 한겨레신문사, 평화네트워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비롯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강의한 바 있다.
강의 내용은 남북시민사회비교, 북한 탈출기, 정착기, 북한 청소년들의 교육, 북한과 남한 인권문제 비교, 한반도 평화 좌담, 북한 및 남한 교육제도 비교, 멘토로서의 오피니언 리더, 멘티로서의 탈북민에 대한 내용, 북한의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최 씨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평화를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범위를 더 넓혀 인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게 더 좋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간과 사람이 살아가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각은 ‘다가올 통일’은 물론 ‘통일 이후’에 남북한 국민이 사회문화적으로 통합을 하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동전의 양면처럼 북한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는 또 갈등을 줄이고 평화로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최장현 강사를 지난 1월 27일 만나 평화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양재단에서 하는 평화 강의 사업에 대해 소개해 달라.
평화교육은 남북 간의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담당하려고 한다. 첫째 목적은 탈북민과 남한 주민 간의 화합이다. 남북한 주민들은 분명히 문화적 이질감을 서로 느끼고 있다. 평화교육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줄이는 데 있어 큰 부분을 맡고 있다고 본다.
△강의는 주로 어떤 사람이 참여하고 있나.
강사는 주로 만 37세 이하의 북한 출신 대학생과 직장인 위주로 구성돼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나.
현재 초중고 학생들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간혹 대학생이나 대학원원생이나 NGO 단체 회원들이 평화교육을 요청해온다.
△평화 내지 평화학 차원에서 북한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평화라는 단어는 거창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인간에 대해 기본적인 욕구만 이해하고 존중해도 가능해진다. 남과 북의 사람들 모두 추우면 따뜻함을 찾고 배고프면 먹고 싶어 하고 외로우면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가족에 대한 애착도, 사회적 명예욕도 같이 가지고 있다.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바람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고 그도 그렇다. 단지 그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고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려는 데 있어 힘이 다를 뿐이다. 그 인간적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평화의 싹이 튼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단어에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 간과할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가리고 있는 익명의 북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그 곳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 동정,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평화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북한 이질감 해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북한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북한에 대해 정치경제적 측면으로만 보려는 데 익숙해서 다소 경직이 돼 있는 것 같다.
통일 이후 민주주의적 정치구조,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아무리 잘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소득의 차이,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문화적 충돌, 지식의 불균형을 다 해결해줄 수는 없다.
이런 문제들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인문학적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고 본다.
△인문학적 시각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달라.
단어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낭패(狼狽)’라는 단어의 어원은 이렇다. ‘낭(狼)’은 앞다리가 긴 수컷 늑대다. ‘패(狽)’는 뒷다리가 긴 암컷 늑대다.
둘은 같이 다닌다. 그래야 사냥을 해서 배도 채우고 동굴에 들어가 잠도 잘 수 있다. 둘이 떨어졌을 때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낭패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그런데 이 암수가 처음부터 붙어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만나 합체했을 때 서로는 서로에 대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컷 낭이 힘이 세다고 암컷 패에게 명령할 수도 없다. 상대에게서 발견하는 이질감들을 힘으로 없애려는 투쟁이나 증오의 방식으로는 함께 공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남북한 주민의 화합이나 통일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서로 다른 정치·경제·문화적 영토에서 생긴 가치관들을 수용하거나 그대로 인정하는 시각이 없다면 통일은 오히려 우환으로 다가오거나 낭패가 몸이 분리되었을 때의 실패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강의는 주로 어떤 내용인가.
주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강의를 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다비드 칼리의 동화 <적>과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들어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적>에는 두 적군 병사가 어디서 내려왔는지도 모르는 전투지침서 때문에 서로를 오해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아이히만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혹시 아이히만은 아닌지, 우리의 삶에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은 없는지 등을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남한과 북한의 군인들과 주민들도 이런 삶의 질곡에 묶여있는 건 아닌지 묻는 형태이기도 하다,
가시적인 부분에서 비가시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훈련도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학생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서 어떤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지 묻는다.
작년(2014) 7월 부천의 한 중학교에 강의를 나갔다. 북한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는지, 탁아소부터 학생, 대학생, 노동자, 농민, 군인, 보안원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북한의 패션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북한의 패션을 남한과 다르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강의가 대부분이다. 이런 보여주기 형태의 강의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패션은 그 나라 사람의 문화나 가치관, 생활양식이 배어 있다. 패션이 제2의 인격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에 동의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사회적 가치관 혹은 이데올로기가 묻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의 복장에서 북한의 일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즉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아이들이나 청중에게 이야기하거나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왜 아이들이 붉은 넥타이를 매고 있는지, 넥타이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하필 넥타이의 모양은 삼각형인지, 넥타이를 매는 것이 소년단원이라는 증표인지, 소년단원은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소년단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소년단을 졸업하면 무엇이 되는지, 왜 아이들은 어떤 조직에 가입해야 하는지, 어떤 조직에 가입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양한 생각과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런 하나의 현상, 하나의 모습에서 끊임없는 물음과 답, 그리고 그 답이 부르는 또 다른 물음의 의미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도 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정도는 묻고 토론하는 방식만으로도 충분하다.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강의라는 단어의 전통적 의미는 마치 선생과 학생으로 이분화돼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강의는 쌍방향커뮤니케이션의 토론장이다.
반응이 매우 좋다. 자신의 이야기, 삶의 맥락과 연관되는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큰둥하거나 잠자는 친구도 없다. 혹은 그들의 궁금한 점을 적은 질문들을 취합해서 가장 많은 호기심이 있는 주제를 선택해 강의하기 때문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참여한다.
△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
‘북한 사람도 통일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이다. 통일을 바라는데, 그 통일의 개념이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 남한 사람은 남한 주도의 통일을, 북한 사람은 북한 주도의 통일을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부가 자기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북한 정부를 남한 정부보다 더 신뢰하는 것 같다.
결국 통일이 갑자기 남한 주도에 의해 된다면 분명히 거기에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민주주의에 의한 국가 운영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남한 주도의 통일을 원했던 사람들도 실망하지 않을 테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원했던 사람들도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은 그럴만한 능력과 자질과 용기를 갖고 있다고 본다.
△북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세상을 망치는 거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다. 북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판단 중지적 관점이다.
북한에 대한 단 하나의 시각이 아니라 여러 개의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어떤 관점도 절대적 법칙처럼 군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북한에 대한 지식들은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것들이다. 혹은 사실이 아닌 것들도 있을 것이다.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절대적인 판단을 중지하고 관조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인가.
평화는 힘의 무충돌 상태가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서나 개인적 힘 아니면 구조적 힘이 존재한다.
여기서 어떤 힘이 다른 힘보다 우세해지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 혹은 어떤 부분에서는 힘의 갈등이 불가항력적이라면 그 힘이 서로를 거세하거나 상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충하고 보완하거나 또는 발전시키는 힘의 연합이 평화라고 본다.
△올해부터 강의 방식이나 운영 방식에 변화를 줄 예정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예정인가.
초중고학생들의 경우 수업 형태의 강의만이 아닌 북한 음식 만들기, 임진각 방문하기, 북한 출신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 등산, 여행, 봉사 활동 같이 북한 문화의 체험, 탈북민들과의 만남 등으로 다양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향후 계획을 듣고 싶다.
탈북민 강사들이 가진 비장의 무기는 북한에서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남한 학생, 주민의 삶에 연결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독서에서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으로 5년 동안은 강사들이 독서 스터디와 세미나, 토론을 통해 깊이를 더 많이 다질 생각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짧게 해 달라.
평화강사라는 직업은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 취직해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길을 버리고, 평화교육에 전념하려는 것은 지금 한국사회에 계속 편입되는 탈북민이나 이주노동자, 그리고 통일 후 만나게 될 남과 북의 주민들이 우리가 했던 평화 교육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평화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이제 태어날 우리 아이들, 이제 성장해서 취직하고 결혼하게 될 우리 아이들이 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았으면 하는 희망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물론 모든 분들이 조금씩 고생하거나 희생할 용기를 내야 한다. 응원해 주시기를 바라고 함께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
최장현
1984년 7월 27일 출생.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졸업한 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경희대 대학원, 서울시 다산콜센터, 한겨레신문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초중고등학교에서 통일, 남북한 사회 등을 중심으로 강연을 했다. 또한 우양재단이 진행하는 평화 관련 사업에 참여하는 등 평화학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방과후학교인 미래소망스쿨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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