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며 요리를 하다
"잔인한 강 건너 온 삶의 여행은 외상과 내상을 남겼지만, 다가올 상처는 두렵지는 않다"
남자는 고독하다.
모든 남자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소(牛)의 운명을 타고 났다.
모든 것을 소유해도 허전한 남자는 사막으로 가든지, 산으로 올라간다.
후배가 사다 준 하와이안 원두커피를 마시며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알제리 여가수 Souad Massi의 곡 ‘Malou‘로 듣는 목소리는 불안한 정서를 심하게 파고든다.
아직 가보지 못한 아랍과 아프리카의 이미지들이 음악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지면 원두커피의 향에 이끌려 이스탄불의 바닷가 카페에서 야경을 보며 마시던 홍차와 커피의 향이 살아난다.
민족마다 다른 악기를 소유하듯이 삶은 저마다 다른 향기와 색깔을 지닌다.
할 일이 태산처럼 밀려 있고 일상의 밀도는 촘촘할 때, 마트나 재래시장에 나가 요리 재료를 사와 요리를 한다.
가벼운 해물파전이나 김치전을 하다보면 음악이 자꾸 심장을 흔들어 놓는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번잡스런 나에게서 멀어져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생기는 온전한 시간이 된다.
그것이 요리든 커피를 내리거나 타는 것이든 혹은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든.
남자의 동굴은 해방구가 아니라 성찰의 장소라고 불러야 더 적합할 것이다.
커피를 한 잔 더 마신다.
요리를 하기 전에 마시는 커피는 전투를 치르기 전에 차를 마시며 모든 전략을 점검하고 다가올 피의 양을 예측하는 느낌이 든다.
대파, 쪽파, 버섯, 야채를 흐르는 물에 씻는다.
흘려보내는 흙을 보며 쓸모없는 것들을 걷어내는 것은 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여자들은 요리를 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할까?”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피부세포에 붙은 참혹한 느낌들을 물로 세척하는 것은 아닐까.
평온한 일상에 위장을 걷어내고 거친 유혹들을 상상하는 것은 아닐까.
버림받은 부모를 생각하며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잔인한 강을 건너 온 삶의 여행은 외상과 내상을 남겼지만, 앞으로 다가올 상처는 두렵지는 않다.
요리를 끝내고 설거지도 마쳤다.
세 번째 마시는 커피는 인스탄트 커피로 마신다.
내리는 커피와 물에 타 휘젓는 커피는 맛도 향기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어디 다른 것이 그것뿐이겠는가.
이스탄불의 바닷가에서 마시던 커피는 음악과 그곳의 냄새를 담고 있었다.
나는 살아있다.
비록 음악과 커피 그리고 시시한 요리 재료들이지만 그 많은 향기들이 나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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