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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黑龍江)는 알고 있다

"하바롭스크에는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1885-1918)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조선인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자로 볼셰비키 혁명 후 극동 소비에트의 외무위원장이 되었다가 하바롭스크를 점령한 일본군과 백군에 의해 처형돼 아무르강에 수장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바이킹의 후예 바랑기아인(Væringjar), 즉 루시의 국가였다. 루시는 현지 슬라브어로 ‘뱃사람’의 뜻이 있다고 한다. 루시들은 시베리아의 삼림의 바다, 초원의 바다를 ‘뱃사람’처럼 개척해 오늘의 거대한 러시아를 만들었다. 사진=하바롭스크 옆 아무르강(흑룡강), 나무위키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을 딴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에서 아무르강과 만나는 우수리강을 따라 내려오면 연해주에 이르고 황제 진상용의 해삼으로 유명한 해삼위(海蔘威)가 나온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는 조용한 어항을 제국의 위상에 걸 맞는 군항을 건설했다. 군항의 이름은 제국의 꿈이 담긴 ‘블라디보스토크’, 즉 ‘동방(보스토크)의 정복(블라디)’이다. 사진=하바롭스크 레닌 광장, 나무위키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을 딴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에서 아무르강과 만나는 우수리강을 따라 내려오면 연해주에 이르고 황제 진상용의 해삼으로 유명한 해삼위(海蔘威)가 나온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는 조용한 어항을 제국의 위상에 걸 맞는 군항을 건설했다. 군항의 이름은 제국의 꿈이 담긴 ‘블라디보스토크’, 즉 ‘동방(보스토크)의 정복(블라디)’이다. 사진=예로페이 하바로프(Yerofey Khabarov, 1603~1671), 위키백과

아무르(黑龍江)는 알고 있다

유주열 전 중국 베이징 총영사가 쓴 ‘아무르(黑龍江)는 알고 있다’는 러시아의 바랑기아인(Væringjar) 역사, 17세기 탐험가 하바로프(1603-1671), 조선인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자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1885-1918) 이야기를 비롯해 차이나+1(China+1)과 포스트 차이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극동 러시아가 아직 덜 개발된 것은 우리에게 블루오션을 제공하는 희망의 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눈길을 끈다. 감격사회 245호에 게재한 전문을 옮긴다.
-사람과사회 편집팀

감격사회 245호
2017.11.20.

최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연해주(沿海州, 프리모르스키)와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하바롭스크를 다녀왔다. 연해주는 우리 선조가 세운 발해의 옛 땅이기도 하지만 일본 강점 시대 일본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의 스파이 침투를 우려한 스탈린은 1937년 한인들을 가축처럼 화물열차에 태워 65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2017년은 20만 한인들의 강제 이주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82년 청국의 일본 공사관의 참사관 황준센(黃遵憲)은 ‘조선책략’을 통해 러시아를 ‘地球之上 莫大之國 爲曰 俄羅斯’라고 소개 하면서 거대한 대륙국가인 러시아에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러시아를 대륙 국가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해양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는 바이킹의 후예 바랑기아인(Væringjar), 즉 루시의 국가였다. 루시는 현지 슬라브어로 ‘뱃사람’의 뜻이 있다고 한다. 루시들은 시베리아의 삼림의 바다, 초원의 바다를 ‘뱃사람’처럼 개척해 오늘의 거대한 러시아를 만들었다.

난방 시스템이 없었던 시절 유럽의 귀족들은 모피 코트로 겨울을 견뎠기 때문에 모피는 황금과 같은 고가의 상품이었다. 16세기 말부터 러시아는 모피 조달을 위해 잠자는 땅(sleeping land)이라고 불리는 시베리아 개척에 나서기 시작했다.

17세기 탐험가 하바로프(1603-1671)는 용맹한 코사크 군의 보호를 받으면서 모피 사냥꾼을 인솔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아무르 강에서 중국의 청조(淸朝)를 만났다. 당시 명(明)의 잔존 세력의 진압에 여념이 없던 청조는 러시아인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의 지원을 요구했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나선정벌(羅禪征伐, 청-러시아 국경 분쟁)’이다. 1654년 조선의 장군 변급이 인솔한 100명의 무사들은 아무르 강에서 코사크 군을 만난다. 코사크 군은 전함을 띄워 놓고 있었다. 조선의 파병 부대는 코사크 군을 육지로 유인 사령관을 전사시키는 전공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을 딴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에서 아무르강과 만나는 우수리강을 따라 내려오면 연해주에 이르고 황제 진상용의 해삼으로 유명한 해삼위(海蔘威)가 나온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는 조용한 어항을 제국의 위상에 걸 맞는 군항을 건설했다. 군항의 이름은 제국의 꿈이 담긴 ‘블라디보스토크’, 즉 ‘동방(보스토크)의 정복(블라디)’이다.

하바롭스크에 흐르는 강을 중국에서는 흑수 또는 흑룡강(黑龍江)이라고 부르지만 현지에서는 ‘아무르’라고 부른다. ‘아무르’는 퉁구스(東胡) 말로 ‘큰 물’이라는 의미로 우리말 ‘물(水)’몽골어 ‘무렌’일본어의 ‘미즈’와 어원으로 연결된다. 아무르 강은 중국의 대흥안령과 스타노보이 산맥에서 발원해 러시아와 중국을 적시면서 2824km를 흘러 사할린과 마주하는 타타르 해협으로 빠져 나와 오츠크 한류와 함께 동해 바다로 내려온다.

우리 민족의 일부로 알려진 퉁구스계의 예맥(濊貊)족이 이곳에서 시작했는데 하바롭스크 시의 시기(市旗)에 예맥족의 토템이었던 곰과 호랑이가 마주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후 아무르 강을 둘러싸고 러시아의 적군(赤軍·볼셰비키혁명군)과 백군(白軍·반혁명군 황제파)과의 내전이 치열했다. 일본군은 백군을 도와 시베리아에 출병해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 전투에서 적군과 싸웠다.

하바롭스크에는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1885-1918)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조선인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자로 볼셰비키 혁명 후 극동 소비에트의 외무위원장이 되었다가 하바롭스크를 점령한 일본군과 백군에 의해 처형돼 아무르강에 수장했다고 한다.

김 알렉산드라는 처형되기 전에 아무르 강변의 모래를 밟으면서 조선의 독립을 염원했다고 한다. 하바롭스크를 탈환한 볼셰비키 적군은 김 알렉산드라를 추모해 아무르강의 물고기를 2년 간 먹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2009년 김 알렉산드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194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던 김일성(1912~1994) 항일 빨치산 부대가 일본 관동군에 쫓겨 아무르 강변 바츠코예 야영지에서 소련군으로부터 게릴라 훈련을 받았다. 김일성은 일본이 항복하자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 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됐다.

우리나라는 북방정책에 의해 공산권인 소련(1990.9) 및 중국(1992.8)과 수교했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라는 지도자를 만나 정치가 안정되면서 개혁 개방정책이 순조롭게 성공하여 한중관계는 최상의 관계를 유지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등 국내 정치적 불안정으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한중 관계는 2017년이 수교 25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사드 배치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제 19차 대회를 거치면서 한중 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서는 장기적으로 차이나+1(China+1, 중국 이외 한 곳에 동시 투자) 또는 포스트 차이나(중국이 산업화로 외자가 필요 없게 될 경우)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초 문재인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극동 지역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극동 러시아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고 북한에서는 두만강만 건너면 된다. 우리 기업의 포스트 차이나를 준비할 경우 물류 등에서 동남아시아 보다 극동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한다.

이번 여행 중 찾아 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 사이에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초원이 인상적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가 더워지고 있다. 앞으로 사람 살기에 적합해지는 극동 러시아가 아직 덜 개발된 것은 우리에게 블루오션을 제공하는 희망의 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유주열
일본 나고야 총영사, 중국 베이징 총영사, 인천대 초빙교수, 한국무역협회,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한중투자교역협회 자문대사, 한국외교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중일 문화 삼국지』, 『동아시아 체스판이 흔들린다』 등이 있다.

함께 읽기

예로페이 하바로프(Yerofey Khabarov, 1603~1671)
레나강(江)과 아무르강(江)을 탐험했던 러시아의 탐험가. 벨리키우스튜크(Veliky Ustyug) 지역 출신이다. 하바롭스크라는 도시 이름과 시베리아철도의 예로페이 파블로비치라는 철도역의 이름이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따왔다. 1625년 토볼스크(Tobolsk)에서 만가제야(Mangazeya)까지 항해했다. 3년 후에는 그의 탐험대와 함께 타이미르(Taimyr) 반도의 동쪽 부분에 있는 헤타강(Kheta River)에 도달하였다. 1632~1641년 그는 레나강에 도착했고 쿠타강(Kuta River)과 키렌가강(Kirenga River)의 어귀에 있는 레나강을 따라서 제염소를 갖춘 농업 정착촌을 발견하였다. 1651~1653년에는 우르카강(Urka River)이 아무르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서부터 우수리강(Ussuri River) 어귀까지 아무르강을 따라 내려갔다.
두산백과

※ 이 글은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운영하는 ‘감격사회(감사와 격려로 사랑을 회복하는 칼럼공동체)’에 함께 게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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