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회™ 뉴스

루터 ‘종교개혁 95개조 반박문’

"면죄증 효과가 돈보다도 먼저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한다면 왜 중지했는가?"

20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대한 항의서인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만성교회(All Saints’ Church) 정문에 게재한다. 사진=위키백과

마르틴 루터(독일어: 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1546년 2월 18일)는 독일의 종교개혁가이다.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였으며, 훗날 종교개혁을 일으킨 역사적인 인물이다.[1] 본래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던 루터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와 같은 잘못을 비판하고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얻는(der Rechtfertigung durch den Glauben) 이신칭의를 주장하였다. 칭의를 통한 개인 구원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다. 면죄부 판매을 비판한 그는 1517년 95개 논제를 게시함으로써 당시 면죄부의 대량 세일을 하는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대사령 설교 담당자인 요한 테첼에 맞섰다. 1520년 그는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오직 성경의 권위을 앞세우면서 비성경적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1521년 보름스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결국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였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붙였는데 이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이 되었다. 그의 종교 개혁은 당시 종교와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진=위키백과

[생각산책] 종교계와 세금, 죄와 벌을 생각하며

루터 ‘종교개혁 95개조 반박문’ 全文

20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대한 항의서인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만성교회(All Saints’ Church) 정문에 게재한다. 루터가 제시한 ‘종교개혁 95개조 반박문’ 전문(全文)을 소개한다.

1. 만유의 주님이시며 영원한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선포하신 그 골자는 성도들의 생애가 참회의 요소가 있어야 함을 의미하노라
2. 이 증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Sakra-mentlishen) 곧 제사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속죄의 고백이 있어야 함을 선언하노라
3. 오늘의 선언은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 만약 육신의 내적인 회개가 정욕까지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이유로 성도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참회의 가치는 무용이며 징계 또한 계속될 것이며 성도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괴로움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으로 교회의 권위를 이용해서 징계나 그 어떤 벌도 용서할 권세를 갖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그 어떤 죄라도 사할 힘이 없다.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에도 부족을 느껴야 하며 오히려 업신여김(Verachten)을 당하게 될 때 그 죄 자체도 그대로 잔재하여 있는 것이다.
7. 하나님은 그의 대행자인 제사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 교회 법은 징계를 전제로 할 때 그것은 산자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나 교회의 규정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고(困苦)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황은 오히려 자비를 베풀면 되는 것이다.
10.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연옥 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응용하는 제사들의 행위는 아주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11. 성경적인 죄의 적용을 연옥의 죄로 변질시키는 가라지(밀과 함께 자라는 독초) 같은 행위는 감독들의 잘못임을 지적하고 싶다.
12. 전례의 법대로 한다면 종교상의 벌은 회오의 증거로서 사면의 뒤가 아니라 전에 부과되었던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13. 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써 자유롭게 되며 교회 법령의 여러 요구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이 되고 그 법령의 형벌에서 정당하게 자유 해방된다.
14. 회개치 않은 죄인이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의 심령상태는 오직 공포를 초래할 것이며 그 불완전이 크면 클수록 공포도 또한 클 것이다.
15. 여기에 불안과 공포는 연옥의 고통을 뜻하며 그것은 곧 절망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6.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차이점은 구원의 확실성과 절망에 이르는 상태와 절망의 상태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17. 연옥이란 공포의 장소이며 그곳은 공포의 감소로도 해석할 수 있다.
18. 이상의 지적들이 성경적 근거로서나 이성의 증거로서도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19. 구원의 예정성에 대하여는 확실한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으나 연옥의 영들에 대하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20. 교황이 모든 죄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사면을 공포할 때 그는 죄를 사면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 다만 그 자신에게 지은 문제에 대해서만 용서적 사면을 의미해야 한다.
21.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교황은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사면해 줌으로써 형벌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행위이다.
22. 교황은 지옥에 있는 영혼에 대하여 그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죄 문제로 인한 형벌은 오직 성경적 방법으로서 현세에서 사함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 모든 죄의 문제로 사면이 가능하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 수는 극히 제한된 숫자일 것이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하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버젓이 사기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의 내세관의 잘못으로 인해 감독 교구 목사들까지도 그 영향력으로 잘못 되어가고 있다.
26. 천국의 열쇠를 핑계삼는 일은 아주 잘못 되었으나 영혼들에게 사죄를 가르치는 일은 잘한 점이다.
27. 연보 궤안에 넣은 돈 소리가 날 때마다 지옥에 간 영혼이 해방된다는 말은 인간의 학설에 지나지 않는다.
28. 성도들이 헌금한 돈이 연보궤 안에서 땡그랑 소리를 낼 때 그 행위는 탐욕에 가득 찬 행위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성직자의 대속의 기도도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29. 마치 성 세베린과 파스칼리스에 관한 전설의 기록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떠한지를 누가 알 것인가!
30. 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 완전히 사면을 받았는지를 위의 행위들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31.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귀한 것 같이 면죄증을 사는 사람도 사실은 거짓의 행위로 그리한 것이다.
32.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은총이라고 설득한 사람을 모든 이들은 특별히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34. 그 이유는 사면의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35. 연옥에 가 있는 자들의 영혼을 신부의 중견적 역할을 통해서 드려진 사면장의 이유로 그들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비성서적 교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36. 진심으로 회개한 모든 크리스천들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중생한 성도는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증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하나님의 사면 선언이 교황에게 부여됐다면 교황이 주는 사면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39. 면죄증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유능한 신학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리라.
40. 참다운 회개는 징계를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증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징계를 등한시하고 슬픔을 가지려하는 행위까지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41. 사도계승과 교황 사면증을 받게 하는 행위를 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알도록 설교해서는 안된다.
42. 교황의 지도가 면죄증을 미끼로 해서 그것을 자선 사업인양 교훈한 것은 교황의 잘못된 의도임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불쌍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는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 더 선한 일이라는 것을 모든 크리스천에게 교훈해야 한다.
44. 면죄증으로 인간은 선하게 되지 못하며 사랑의 선한 행위로만이 형벌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45. 오직 면죄증을 위하여서는 교황에게 돈을 바치고 가난한 자에게 관심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딤전 5장 8절의 교훈 같이 경제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위하여서는 필요한 것을 저축할 수 있어도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증에 대한 판매 행위는 그 어떤 개인에게는 자유로운 행위일지 모르나 그것을 성도들에게 강요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48. 경건의 신앙생활은 교황에게 면죄증을 사는 일보다 그 개인을 위해 훨씬 좋은 행위인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증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옳은 행위이다. 그러나 면죄증 문제로 하나님께 두려움을 갖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임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들으라. 교황은 당신의 면죄증을 위해 설교자들의 행상행위를 묵인한다면 그것은 양의 가죽의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다는 사실은 차라리 그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이 나을거라고 크리스천들에게 교훈함이 좋지 않겠는가?
51. 교황 사제자들의 잘못 때문에 많은 돈을 빼앗긴 자들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까지 갚아주어야 하리라.
52. 교황 자신도 면죄증서로 영혼을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그 행위 자체도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53. 모든 교회에서 면죄증 문제가 묵인된다면 그렇게 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것이리라.
54. 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증 문제를 더 깊게 다루는 행위는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교황의 의중이 그 어떤 의식이나 행위 따위가 복음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찬양한다면 그것은 바른 의사임에 틀림없다.
56. 교황의 면죄 사건은 아직까지 교회나 그리스도인에게 표시되어 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57. 위의 행위들은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할진대 오히려 면죄증 판매인들은 이것을 쌓아 두고자만 하고 있다.
58. 위의 잘못된 행위들은 항상 속사람과 겉사람에게 은총과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에 관한 교훈을 혼돈시키고 있을 것이다.
59. 성 로렌티어스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어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St. Laurentius는 258년 순교했다).
60.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주어진 교회의 열쇠는 장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 관리의 유보 사건을 위해서는 교황의 능력에 적용된다고 봄이 좋다.
62. 교회의 참 뜻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복음이 되는 것이다.
63.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이런 일들 때 증오의 사건이 있음을 지적한다.
64. 이와 반대로 면죄증의 사건은 항상 나중된 것을 먼저로 하기 때문에 모순이다.
65. 돈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옛날부터 전해오는 복음의 가치는 사람들이 낚던 그물에 비유된다.
66. 그러므로 면죄증 사건 역시 오늘날에 와서도 재물 많은 사람들을 낚는 그물에 비유된다.
67. 사실인 것처럼 가장 시키는 면죄증 설교자들은 이것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는 것이다.
68.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총은 면죄증이 아무것도 아님을 교훈시키고 있다.
69. 감독들 교구 목사들은 사도 계승의 면죄의 대리자가 아님을 적의를 갖고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
70. 성직자들의 의무는 교황이나 자기들의 꿈을 설교해서는 안된다.
71. 사도 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분별해야 한다.
72. 다른 한편 면죄증 설교자들의 잘못되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을 받을지어다.
73. 교황은 어떤 방법이든지 면죄증 판매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분노로써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74. 그것을 구실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교황은 심한 의분을 나타내어야 하리라.
75. 하나님을 능욕한 죄까지도 면죄증으로 사할 수 있다는 교황의 발언은 정신 나간 발언들이다.
76. 우리들의 주장은 교황의 면죄증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77. 베드로가 교황이라고 할지라도 면죄증과 같은 그 이상의 은총은 줄 수 없다.
78. 현 교황이나 또는 다른 어떤 교황도 사실 면죄보다 더 큰 은총(고전 12장) 즉 가르치는 은사와 능력 혹은 병 고치는 은사는 가지고 있다고 본다.
79. 교황의 팔로써 사용되는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모독한 행위다.
80. 위의 가르침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묵인된다면 이것은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81. 잘못된 면죄증 설교나 비방은 교황의 존경에 대한 것으로 응용되지만 그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쉬운 일은 아니다.
82.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하여 보잘 것 없는 돈의 가치를 높이는 교황의 행위가 위대하면 왜 연옥을 비우지 못하는가?
83. 구속 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연기제를 계속 하는가? 또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 취소를 명령하지 않는가?
84. 경건치 못하면서도 하나님께 잘못을 범하고 있는 자를 돈으로 인하여 경건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건한 영혼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구속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교황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85. 회개의 가르침은 교회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고 이제는 면죄증 덕분으로 구속된다는 사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86. 제일 돈 많은 자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자들이 내는 돈으로 하지 않고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 속죄함 받은 자들에게 무엇을 구하려고 또한 무슨 영적 은혜의 참여를 추구하려고 하는가?
88. 교황이 신자들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 번씩 행하는 것을 하루에 백번 실행 한다고 한다면 교회는 더 큰 복을 받겠는가?
89. 면죄증의 효과가 돈보다도 먼저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한다면 왜 중지했는가? 그와 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90. 교황은 수많은 세인들의 예리한 반기에 대해서 떳떳하게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일들 때문에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가?
91. 면죄증이 교황의 바른 정신에 따라 의도 되었다면 오늘의 이러한 어려움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택함받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불안도 없는 상태에서 평안만을 부르짖는 예언자들의 외침은 모순이요 잘못이니 떠날지어다.
93.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십자가를 강조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겔 13:10, 렘 6:14, 8:11, 살전 5:3).
94. 모든 신자들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또 지옥 같은 고통을 통해서라도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해야 한다.
95. 이와 같이 하여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값진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할지어다.

마틴 루터
1483년 독일 작센 주의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다. 1505년 7월 2일 벼락이 바로 앞에 떨어져 앞서 가던 사람은 죽고 마틴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순간, 하늘의 무섭고도 은혜로운 힘을 느꼈다. 1505년 7월 17일,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문, 1507년 사제(司祭)가 되었고, 1511년 비텐베르크 대학교로 옮겨 수학하며, 1512년 신학박사가 되었고, 1513년부터는 성서학 강의를 시작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부속 교회당 정문에 ‘95개조의 논제’라는 제목으로 면죄부(免罪符) 판매 등 교회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하는 문서를 전격 게시, 1521년 1월 3일 교황 레오10세로부터 파문 처분을 받다. 1525년 6월 13일 결혼식, 신부(新婦)는 16년 연하의 전직 로마가톨릭교회 수녀인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년). 1546년 63세의 나이로 자신이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참고
리포르만다
동탄명성교회 신앙자료실

About 사람과사회™ (260 Articles)
사람과사회 홈페이지 관리자 계정이다. thepeopleciety@gmail.com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