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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 시인 별세

“한 방울의 눈물이 평생의 고백”,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

박서영 시인이 2018년 2월 3일(토) 지천명(50)의 나이로 별세했다.

박서영 시인은 “좋은 시는 남과 다른 시여야 한다”며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나서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 시인이 시에 담은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무덤 박물관 가는 길」), “한 방울의 눈물이 평생의 고백”(「흑백 사람」) 등은 그를 잘 나타내는 시어다.

박서영 시인 별세

좋은 시는 남과 다른 시여야 한다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
한 방울의 눈물이 평생의 고백

박서영 시인이 2018년 2월 3일(토) 지천명(50)의 나이로 별세했다.

박 시인은 “좋은 시는 남과 다른 시여야 한다”며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나서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 시인이 시에 담은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무덤 박물관 가는 길」), “한 방울의 눈물이 평생의 고백”(「흑백 사람」) 등은 그를 잘 나타내는 시어다.

박 시인은 196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천년의시작, 2006), 『좋은 구름』(실천문학, 2014)이 있다. 『시와경계』, 『디카시』 등에 글을 많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에서는 당신이 찾은 언어로 시작(詩作)으로 새로운 시작(時作)의 삶을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이 점화한다
복제보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펑펑 터진다
누가 태초에 봄여름가울겨울의 이름으로 저 제비꽃을
민들레를 엉겅퀴를 개망초를 세상에 꽂기 시작했을까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이 열린다

누가 소멸한 기억에 똥물을 주고 햇볕을 주고
바람을 주며 그들을 불러내는가
빈집 뚜껑을 열고 불쑥 한 덩어리 기억을 끄집어내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떠돌아다니게 하는가
생각해보면, 생은 모두
낯선 집게에 걸려 파닥거리다가 멈추는 것

내 등을 집어 올리는 묵직한 고통을 느끼며
여기저기 불록불록 솟구쳐 있는 무덤 옆을 지난다
저것들은 땅의 상처, 아물지 않은 물혹들이다
저 푸르디푸른 문을 열어라
이제 내가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은
저것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박서영, 「무덤박물관 가는 길」(『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천년의시작, 2006) 전문


좋은 구름이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들은 그런 걸 찾아 떠난다고 했다. 빈 들에 나가 여자를 불렀다. 사랑스러운 여자는 화장하고 옷 차려입느라 늦게 나갔다. 사진작가는 버럭버럭 화를 냈다. 좋은 구름이 떠나버려서, 좋은 구름이 빈 들과 여자를 남겨두고 떠나버려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여자는 오래 빈 들에 서서 보았다. 사자와 치타. 새와 꽃. 눈물과 얼룩. 구름 속에서 자꾸 구름 아닌 것들이 쏟아졌다. 남자는 화가 나서 떠나갔다. 한 프레임 속에 좋은 구름과 빈 들과 여자를 넣지 못해서.
-박서영, 「좋은 구름」(『좋은 구름』, 실천문학, 2014) 중에서

박서영 시인은 196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천년의시작, 2006), 『좋은 구름』(실천문학, 2014)이 있다. 『시와경계』, 『디카시』 등에 글을 많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께 읽기
박서영,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http://www.yes24.com/24/Goods/2115778
박서영, 『좋은 구름』
http://www.yes24.com/24/goods/12266053

About 김종영™ (915 Articles)
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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