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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불평하지 않는다”

"발은 주춧돌이다. 몸의 끝자락에서 나를 지탱해준다. 수많은 뼈와 관절, 근육과 인대, 혈관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구조다. 발바닥에는 인체의 각 기관과 상응하는 반사구가 밀집되어 있다. 이곳에 자극을 주면 피돌기가 좋아지고 통증이 가라앉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사람들이 발마사지를 즐기는 이유다. 오장육부와 연관된 전신의 축소판이자 혈의 집결지인 발은 어쩌면 밑바닥이 아니라 우리 몸의 중심이다. 움직이는 순간, 경이롭게 반응하는 그것으로 평생 지구를 네 바퀴 반이나 걷는다. 그러나 발은 수인(囚人)처럼 신발에 갇혀 지낸다."

발은 “신이 만든 최대의 걸작이며 예술품”이라고 극찬한 다빈치. 그 말에 공감한다. 작은 발이 해내는 놀라운 역할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인체에 대한 그의 생리학적 식견뿐만 아니라, 삶이 다하는 날까지 묵언으로 그려내는 생의 족적도(足跡圖)에 대한 예찬인지도 모른다. 발이 주목받는 여름, 여성들의 발찌는 패션의 아이템이다. 맨발의 부끄러움을 넘어서 당당하게 드러내는 자신감, 혹은 발의 노고에 대한 보상심리다.

머리가 하늘이면 발은 땅이다. 머리가 동해라면 발은 서해다. 머리가 아버지라면 발은 어머니다. 허공의 발품은 없지만 지상의 발품은 있다. 깊은 바다의 발품은 없어도 얕은 바다의 발품은 있다. 아비의 허망(虛妄)보다 어미의 발품이 있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유명 축구 선수의 몸값은 바로 발품의 값이었듯, 발과 발품은 떨어져 생각할 수 없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역사는 하늘을 섬기는 머리가 아니라 땅을 섬기는 발의 기록이다.

최장순 수필가 jschoi0426@hanmail.net

“발목 잡힌 정부,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뉴스가 발목을 잡는다. 소파에 앉아 무심히 발을 내려다본다. 지금 나의 걸음을 막은 것은 나의 발목, 그렇다면 내 발목을 잡은 것은 누구인가. 맨발이 멀뚱멀뚱 올려다본다.

“고생이 많다.”

굽은 발가락이 대답이라도 하듯 꼼지락거린다.

왜 나는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이 발에는 무심했을까. 나를 온전히 받쳐준 든든한 바닥.

“발은 주춧돌이다”

발은 주춧돌이다. 몸의 끝자락에서 나를 지탱해준다. 수많은 뼈와 관절, 근육과 인대, 혈관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구조다. 발바닥에는 인체의 각 기관과 상응하는 반사구가 밀집되어 있다. 이곳에 자극을 주면 피돌기가 좋아지고 통증이 가라앉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사람들이 발마사지를 즐기는 이유다. 오장육부와 연관된 전신의 축소판이자 혈의 집결지인 발은 어쩌면 밑바닥이 아니라 우리 몸의 중심이다. 움직이는 순간, 경이롭게 반응하는 그것으로 평생 지구를 네 바퀴 반이나 걷는다. 그러나 발은 수인(囚人)처럼 신발에 갇혀 지낸다.

아담과 하와는 맨발이었다. 일평생 죄를 신고 다녀야 했더라도 에덴 이후의 발자취는 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족적, 누군가는 그것을 남긴다 하고 누군가는 길을 연다고도 한다. 나도 아담과 하와처럼 맨발의 자유를 즐긴다. 비온 뒤 촉촉한 땅이나 고운 모래 위를 걸을 때면 그 즐거움은 배가된다. 머리가 아닌 발로 나를 느끼고 싶을 때, 행선(行禪)하는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발바닥에 와 닿는 감촉은 쾌감을 느낄 만큼 매혹적이다. 숨통 트인 발이 내게 베푸는 만족이다.

여자들은 노출에 좀 더 자유롭다. 맨발의 자유는 매력으로 다가와서, 샌들에 드러난 발은 은밀한 유혹이다.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좀 더 다양하게 표현하는 자신감으로 호기심을 불러 세운다. 양말과 신발에 갇혀야 했던 억눌린 발의 ‘자유선언’을 보는 것 같다.

여성들에게 여름 패션의 완성은 발이다. 샌들 끈은 발의 구속이 아닌 형식. 굵기라든가 꼬아놓은 모양이나 색깔에 따라 멋이 달라진다. 거기에 빨강 혹은 파란 매니큐어로 마침표를 찍으면 섹시한 멋이 드러난다. 인간 최초의 성감대는 발이었다는 말이 맞다. 이불속에서 부비는 발장난이 사랑의 극치라는 말도 이해가 된다.

“신이 만든 최대 걸작이며 예술품”

발은 “신이 만든 최대의 걸작이며 예술품”이라고 극찬한 다빈치. 그 말에 공감한다. 작은 발이 해내는 놀라운 역할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인체에 대한 그의 생리학적 식견뿐만 아니라, 삶이 다하는 날까지 묵언으로 그려내는 생의 족적도(足跡圖)에 대한 예찬인지도 모른다. 발이 주목받는 여름, 여성들의 발찌는 패션의 아이템이다. 맨발의 부끄러움을 넘어서 당당하게 드러내는 자신감, 혹은 발의 노고에 대한 보상심리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덕분에 손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동물과 구별되는 손의 역할로 도구를 만들고 세상을 지배해 왔다. 그것은 몸의 무게를 무시로 감당해 내는 발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머리와 발의 상하 대칭구조는 직립 보행의 산물이다. 머리가 위를 쳐다보며 끊임없이 이상과 야망과 권위를 키울 때, 발은 바닥에 순응하며 현실의 공간에서 머리의 하수인으로 발품을 판다. 모두의 관심은 머리에 있었고 발은 숨김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발은 불평하지 않는다. 발의 확고한 믿음은 디딜 땅이 있어서였다.

보병은 발로 전쟁을 치른다. 땅을 차지하는 것만큼 확실한 승리는 없다. 도보로 임무를 완결하는 그들처럼, 밟아 본 것만 믿기 때문에 결코 헛걸음은 있을 수 없는 발이다. 확실한 징표가 있기에 발은 말을 앞세우지 않고 침묵할 수 있다.

“머리가 하늘이면 발은 땅이다”

머리가 하늘이면 발은 땅이다. 머리가 동해라면 발은 서해다. 머리가 아버지라면 발은 어머니다. 허공의 발품은 없지만 지상의 발품은 있다. 깊은 바다의 발품은 없어도 얕은 바다의 발품은 있다. 아비의 허망(虛妄)보다 어미의 발품이 있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유명 축구 선수의 몸값은 바로 발품의 값이었듯, 발과 발품은 떨어져 생각할 수 없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역사는 하늘을 섬기는 머리가 아니라 땅을 섬기는 발의 기록이다.

순종을 미덕으로 알던 발도 반기를 들 때가 있다. 아니, 하소연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군화를 오래 신었던 군 생활 동안에는 무좀이 괴로웠다. 흔히 있는 일이어서 견뎠지만, 몇 해 전에는 엄지발톱 한쪽 끝이 가시가 되어 피부를 파고들었다. 최근엔 발가락 사이에 티눈이 생겨 병원에 다녀왔다. 액체질소로 냉동치료 중이다. 이렇게 발이 반기를 드는 것은 모두 내 탓이다. 발을 함부로 부린 경고성이다.

눈에서 멀리 있어서일까. 내 몸이 아닌 듯 무심히 대했던 발이 말을 한다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하지 않았을까. 배은망덕에 따른 신세타령이라도 할 것 같다.

“두 다리 쭉 펴고 살도록 더러운 물에서 발을 빼주고, 발등에 불 떨어진 화급에도 발바닥 불이 나도록 발 벗고 나서주고, 심지어 발뺌하는 빤한 거짓도 모른 척 눈감아 주었건만, 발꿈치 때만큼도 여기지 않다니…….”

“내 발목을 잡은 것은 나였다”

요즘 들어 자주 레드카드를 꺼내드는 발. 기울어진 구두 뒤축이 균형을 잃게 만든다. 발목을 비틀어 버리고, 뒤꿈치를 깨물고, 발바닥에 물집을 만들어 나를 절룩거리게 한다. 인내심이 미덕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발은, 몸의 지체다. 몸통에 불만이 있다 해서 자주 독립을 선언할 수는 없다. 밑바닥에서 내는 신음에 귀 기울이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다.

내 발목을 잡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하대(下待)하고 혹사시킨 나 자신이었던 것. 아킬레스건처럼, 치명적인 약점으로 40년 지기에게 발목 잡힌 무너진 권좌(權座)도 보지 않는가.


최장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육군에서 오랜 세월 몸담고 대령으로 전역한 후 ‘쓰지 않을 수 없는 절실함’에 글을 쓰게 됐다.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와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이별연습』(2009)과 『유리새』(2013)를 출간했다. 경기도문학상(2009), 현대수필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2007, 문예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국제펜(International PEN) 회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계간 『에세이피아』 주간 및 발행인을 역임했다. “일상을 떠난 삶이 없듯, 일상을 벗어난 문학도 없다”, “작가는 일상의 반복성에서 오는 지루함과 싸우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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