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는 남자와 책 읽는 남자
"집까지 한 두 시간쯤 되는 거리를 가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만난다"
퇴근길 전철을 타는 시간은 밤 10시쯤이다.
집까지 한 두 시간쯤 되는 거리를 가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만난다.
어제는 맞은편에 정신 못 차리고 잠에 취한 사람과 그 옆에서 책을 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잠에 취해 조는 남자는 좌로 우로 연신 기우뚱대며 옆 사람에게 기대다가 화들짝 놀라기를 반복하고 심지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마저 떨어뜨려도 모르고 졸고 있을 정도였다.
꿈을 꾸는지 가끔 뭐라고 웅얼 거리기도 하고 손짓도 한다.
다리도 쩍 벌렸다 오므리기도 한다.
옆에서 책을 읽는 남자는 불만이 많다.
미간은 있는 데로 찌푸린 모습이 그러하다.
그 손에 들린 책이 시집이나 산문집이거나 소설이 아니길 바란다.
그저 경영서나 잘 살아보세 종류이거나 아니면 나처럼 살아 볼래 하는 책이었으면 했다.
그 책 읽던 남자는 옆에 떨어진 곳에 자리가 나자 고양이처럼 신속하고 민첩하게 자리를 옮긴다.
조는 남자의 휴대폰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음이다.
새롭게 사람들이 승차하고 조는 남자 옆 빈자리는 어김없이 채워지고 인상을 쓰고 웅얼거리다가(입 모양으로 보아 가벼운 욕지거리 한 두 마디임에 분명하다) 내리거나 다른 자리가 나면 고양이 점프로 이동한다.
조는 남자와 침 흘린 셔츠와 떨어진 휴대폰이 내내 시야를 어지럽히던 시간도 흘러 나는 나의 퇴근길 종착역 한 정거장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조는 남자를 깨운다.
휴대폰을 주워 손에 들려주고 문 앞에 선다.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 하다가 뭔 일인가 싶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고맙다는 눈인사 정도를 원했는지 그 뚱한 표정에 살짝 짜증스럽다가, 내 오지랖도 반성해 보다가, 세상도 나도 참 볼썽 사납게 변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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