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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경 Portugal] 포르투갈, 셀카로 보다 01

"드디어 2009년 4월, 8개월의 준비와 결심을 이행할 시간이 찾아왔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즈의 노래, ‘운명’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는 한이 섞인 노랫소리를 들으며, “잘 사는 유럽에 있는 포르투갈에서, 어떻게 한이 서린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토해내듯이 노래를 하는 걸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잊었다. 포르투갈도, 아말리아라는 가수도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나우온은 포르투갈 전문가를 꿈꾸는 노원주민 신숙경을 응원하기로 했다. 책 1권 분량의 글이 완성될 때까지 연재를 이어간다. 노원뉴스 나우온에 포르투갈 현지 특파원이 생길 것 같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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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이 처음으로 다가온 때는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책이었다.

15~16세기 ‘해상왕국’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사 책에 등장했다가, 그후 세계사 책 어느 구석에서도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다시 등장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후 나도 모르게 “도대체, 한 나라가 그렇게 대단한 찬사를 받다가, 바로 사라져 버리는 걸까. 어디로 간거지?” 라는 의문을 사이사이 품었다.

포르투갈이 다시 내 삶 속에 재등장한 때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즈’라는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였다. MBC에서 김수현 작가가 쓴 드라마 ‘사랑과 야망’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시골출신 미자라는 인물(당시, 차화연 씨)이 첫사랑과 쉽지 않은 사랑을 하며, 운명적인 사랑 앞에 고뇌 하는 장면들에서 이 노래는 자주 등장했다.

미자, 여주인공의 사랑의 테마곡 정도로 보이는 노래이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즈의 노래, ‘운명’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는 한이 섞인 노랫소리를 들으며, “잘 사는 유럽에 있는 포르투갈에서, 어떻게 한이 서린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토해내듯이 노래를 하는 걸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잊었다. 포르투갈도, 아말리아라는 가수도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노원구청장님과, 3월에. 리스본 출장 오셨을 때…

노원구청장님과, 3월에. 리스본 출장 오셨을 때…

그러다가, 나는 미국 보스톤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유학한지 2년차에 들던 1997년, 보스톤의 외곽 지역에서 우연히 혼자 식사를 하게 된다.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무표정한 아줌마가 음식을 서빙하고 있었다. 나는 사진으로 소개된 메뉴판에서 해산물과 쌀이 섞인 메뉴를 이름도 모른 채 주문했다. 기대하지 않고 먹었던 그 음식은 꽤 맛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계산을 하면서 식사를 맛있게 했노라고 인사를 하기 위해 내게 음식을 가져다 준 아주머니 쪽을 바라보았다.

리스본의 호시우 광장. 바닥 패턴은 칼데라

리스본의 호시우 광장. 바닥 패턴은 칼데라

내 기대와는 다르게, 그 아줌마는 다른 곳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당혹감에 맛있게 먹었노라라는 말을 해줄 때를 놓치고 말았다. 혼자, 천천히 밖으로 나오면서, “왜 저렇게 무표정할까? 꼭 우리나라 아줌마의 표정 같네.”라며 그 동네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난다.

스페인 음식은 아니었고 스페인 근처에 있는 나라, 포르투갈 식당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고향의 도청 국제 협력과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2002년 월드컵 경기장으로 6개월 파견근무를 가게 되었다. 당시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 축구경기를 동시에 진행을 했고, 한국에서는 10개의 경기장에서 각각 3번의 경기가 있었다. 내가 파견된 전주월드컵 경기장에서 포르투갈과 폴란드의 경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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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던 포르투갈 대사님이 전주 경기장을 방문했고, 나는 영어통역자로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대사님과 대화도 나누고 대사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옆에서 보좌를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사님은 잘 웃지 않고 계속 무표정이었다.

“아, 포르투갈 사람들은 표정변화가 없구나. 무표정한 분들이 많구나.” 생각하며 서운했었다.

포르투갈의 대스타 축구선수 ‘루이스 피구’도 만나 악수를 했지만 그 또한 악수만을 할 뿐, 미소를 짓거나 혹은 다른 제스처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생각보다 아담한 키에 놀랐을 뿐이었다.

포르투갈은 다른 경기장에서 대한민국에게 1:0으로 패배를 했다. 이 경기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이런 단발적인 포르투갈에 대한 강하지 않은 기억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9년 봄 나는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드 꼼뽀스텔라’를 걷는 성지순례, 800킬로미터를 걷는 ‘까미노 프랑스길’에 오른다.

800킬로미터를 35일 동안 걷고 여행 후유증에 시달리던 나는,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벨기에 출신 순례자를 만났다. 그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까미노 순례에 대한 개인적인 조언을 들었다.

테조(Tejo)강 발견의 탑 옆에 앉아있는 나. 벨렘지구, 리스본

테조(Tejo)강 발견의 탑 옆에 앉아있는 나. 벨렘지구, 리스본

가장 인상적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가 방문한 까미노 포르투갈 길에서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게 된 체험 이야기였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어느 도시를 걷다가 고인이 되신 어머니가 자주 들었던 음악을 듣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녀의 까미노 여정은 매년 반복되는데, 아마도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라 했다. 몇 년을 걸어도 힐링이 되지 않던 그녀의 가슴에 파고든, 그 익숙한 노래 덕분에 그녀는 산티아고 순례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가 자신의 귀에 이젠 충분하다.”고, “이젠 나도 잘있다.”고 속삭이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번의 걷기 순례에서 뭔가를 찾을 줄 알았지만, 걷기를 마쳤으나 허무함이 가득한 내 마음에 그녀의 경험이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해 주며, ‘살다 보면 의도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까미노의 기억들이 순간순간 힐링해 줄 것’이라 덧붙였다.

이것이 또 하나의 포르투갈에 대한 나의 몇 가지 기억 중의 하나이다.

당시에는 내가 5년 후에, 바로 그길, ‘까미노 포르투갈 길’ 614킬로미터를 걷게 될 것이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가는 걸까?

하나하나가 내 내면 속에서 포르투갈에 대한 끊이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아, 내게 다가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우온 Ⓒ 신숙경 통신원 / 문화소통 강연자·영어통역사


신숙경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톤의 Lesley Univsersity에서 Intercultural Relations(국제 이문화관계학) 석사 과정을 수학했다. SBS ‘생명의 기적’, 호주TV Channel 9의 한국 현지 취재와 통역을 도왔다. OB맥주,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전라북도청 국제협력과, 타타대우상용차에서 주로 통역과 국제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청소년들에게 한국사를 영어로 교육하는 영어역사아카데미 ‘The REAL Korea’의 대표다. 최근 이베리아 반도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포르투갈 두 나라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2014년 11월부터 포르투갈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 신숙경의 포르투갈 연재는 노원뉴스 나우온의 허락을 받아 사람과사회에 동시에 게재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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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홈페이지 관리자 계정이다. thepeople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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