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경 Portugal] 포르투갈, 셀카로 보다 03
나우온은 포르투갈 전문가를 꿈꾸는 노원주민 신숙경을 응원하기로 했다. 책 1권 분량의 글이 완성될 때까지 연재를 이어간다. 노원뉴스 나우온에 포르투갈 현지 특파원이 생길 것 같다. <편집자>
포르투갈. 무척 낯선 곳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당연히 낯설었고, 또한 여행지에서조차 낯선 곳.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고 서점과 도서관을 뒤졌지만, 예상대로 포르투갈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찾은 책은 ‘리스본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2008), ‘포르투갈, 내게로 오다’(2009), ‘다시, 포르투갈’ (2014) 등 에세이 3권이 전부였다.
스페인 여행서 뒤에 어김없이 나오는 부록까지 포함하면 두세 권 더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다’(2010), 김효선 작가가 까미노포르투갈 길에 대해 쓴 책 1권, 그리고 포르투갈 도시들의 사진으로 꾸민 포토에세이집 ‘지구조각 리스본’(2011) 정도였다.
이 모든 책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몰입을 하며 읽어도, 포르투갈의 이미지를 그려내기는 쉽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다른 곳으로의 여행, 이문화 여행을 좋아하고 낯선 곳으로의 이동에는 항상 설레였던 나조차 무엇을 기대해야 될지 모르게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였다.
동영상을 찾아 아말리아 호드리게즈의 노래와 한국에 두서너 차례 와서 공연을 했다는 마리자의 노래를 들었지만, 갈증이 아득한 그리움으로 바뀔 뿐이었다.
또렷한 이미지로 남지 않은 나라, 구체적으로 표현을 할 길이 없는 나라, 포르투갈. 미지로 가는 길. 무엇과 마주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곳.
‘영어가 잘 통하는 곳일까?’ 라는 질문조차 나는 선뜻 답할 수 없었다. 포르투갈은 어둑한, 무채색의 무성영화처럼 그렇게 흐릿했다. 파두의 숨넘어가 듯 토해내는 노랫가락이 흡사 판소리와 닮았다라는 느낌, 그 선율만이 강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럴수록 나의 궁금증은 어느새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길 위에서 포르투갈을 만날 생각에, 나의 마음은 이미 리스본에 가있었다.
티켓을 찾았다. 2주 뒤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온라인 상에서 자리 하나가 눈에 띈다. 스위스 에어 편이다. 일정확인도 없이, “좌석이 있다! 8월에, 와아!”하며 클릭을 누른다. 비행기 안에만 발을 내딛을 수 있다면 문제없다. 자, 이제 잘 곳이다.
포르투갈은 2014년 여름에도 우리에게는 여행지로 알려지지 않았다. 유럽 배낭여행을 했던 91년에도 미지의 나라였고, 20여년이 훨씬 지난 2014년에도 여전히 미지의 나라였다. 모든 배낭 여행자는 스페인을 유라시아의 끄트머리로 여겼다. 바로 옆에 있는 대한민국과 동일한 위도에 거의 비슷한 크기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이기도 한 포르투갈을 잊고 있었다.
포.르.투.갈. 15~16세기의 해상왕국, 대서양을 건넜던 사람들이 사는 곳. 화석처럼 굳어 어버린 곳.
이런 먼 나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도 한국의 민박이 있었다. 이름은 ‘벨라 리스보아’. 한국인이라고는 아무도 있을 것 같지 않는 그 먼나라에, 한국인이 있었다. 안도감을 느꼈다.
첫 25일 동안은 포르투갈 순례길, 614.5km 까미노를 리스본에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까지 걸으며 포르투갈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것으로 계획했다. 포르투갈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5년 전 프랑스 남부 생장에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까지 걸었던 것과 동일한 방법이지만 다른 루트인,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걷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800km 길을 35일 정도 걸었던 터라, 그보다 200여 km 짧은 길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까미노포르투갈 길을 마치고는, 다음 달은 리스본이든 포르투든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한 달여 머물 계획이었다.
드디어, 짐을 쌌다. 5년 전 그때처럼, 내 몸무게의 10%정도로 배낭을 꾸렸다.커다란 회색 트렁크에 운동복을 포함한, 여름옷을 구겨 넣었다. 여행 동반자로 같이 넣은 김효선 작가의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다”가 유일하게 한글로 된 책이었다.
공항을 향해 달리는 지하철 안.
나는 촌스럽게도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대중교통만큼 편하고, 친근한 게 없다. 커다란 회색빛의 트렁크를 질질 끌고, 빈 40리터 배낭을 쏙 집어넣은 노란색의 커다란 직사각형 가죽 가방을 맨 나는 마치 여왕이나 된 기분이다.
한국에 있으면 주기적으로 심심해 지고 지루해 지는 병이 있는 내게 다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그랬다. 멋진 자가용이 아니라 지하철로 움직이면서도. 남루하지만, 마음만은 최고로 행복한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지하철을 두세 번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마치 여행자의 낭만처럼 느꼈다.
고집스럽게도. 내 여행은 항상 그랬다. 20대 초반 유럽으로 떠날 때도 그랬다. 수고로움조차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날로그형’ 여행자였다.
인천공항의 커다란 공간에서 이곳저곳에서 튀어 나오는 여행객들 틈에서, 갑자기 나는 지난 25년 동안 그 빈번한 여행에서 한번도 어느 누구와도 같이 공항을 방문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헉! 난 항상, 공항에서의 출국도 입국도 혼자였다. 이번 리스본 여행은 포르투갈 사람과 문화,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여행이다.
‘허걱’, 공항에서야 알았다. 프린트해 간 E-Ticket으로는 거의 10시간 일본의 도쿄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고, 다시 보니 2번째 경유지인 스위스 쮜리히에서도 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코스였다. 비행기로 두세 시간이면 닿을 포르투갈 리스본을 앞에 두고, 거의 10여 시간을 공항 대합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체험하는, 당혹스러운 3일간의 공항숙박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륙이다!!
드디어 나는, 한 여름이었던 한국을 뒤로 하고 2014년 8월 20일 그렇게 스위스에어에 올랐다.
나우온 Ⓒ 신숙경 통신원 / 문화소통 강연자·영어통역사
신숙경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톤의 Lesley Univsersity에서 Intercultural Relations(국제 이문화관계학) 석사과정에서 수학했다. SBS ‘생명의 기적’, 호주TV Channel 9의 한국 현지 취재와 통역을 도왔다. OB맥주,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전라북도청 국제협력과, 타타대우상용차에서 주로 통역과 국제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청소년들에게 한국사를 영어로 교육하는 영어역사아카데미 ‘The REAL Korea’의 대표다. 최근 이베리아 반도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포르투갈 두 나라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2014년 11월부터 포르투갈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 신숙경의 포르투갈 연재는 노원뉴스 나우온의 허락을 받아 사람과사회에 동시에 게재하는 기사입니다.
Leave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