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추억을 향한 애꿎은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몇 십 년 전의 삶을 담은 드라마나 노래에 환호하는 것을 ‘복고 열풍’이나 ‘추억 팔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는 어쩌면 매일 매일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염규현 자유기고가 barkat@hanmail.net
굳이 골똘히 생각하지 않아도, 참 어설픈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산다. 어설프게 감정적이고, 또 감히 무엇을 동정하고 동경하기도 한다. 눈물이 많지만, 그 눈물 속의 무엇이 온전히 담겨 있는지 스스로 못 느낄 때가 더 많을 만큼 아둔하다.
현 시대를 살아가며 옛 시대를 동경하고, 그 속에서 어떠한 낭만마저 찾아내려 하는 것은 그 어설픈 치기 중 하나다. 지금 이 삶의 부박함을 인정하지 않고, 매정하다 느끼며, 옛 시절에는 그나마 낭만이 있었다고 위로하는 마음.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고, 겪어보지도 못한 가상의 추억 속에 빠지려는 나약함의 발로일 것이다.
그렇게 서투르게, 남의 잘 쓴 글을 흉내 내고, 어설프게나마 낭만을 꿈꾸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삶도 언젠가는 낭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하찮은 소망을 품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조차도 명백하지는 않기 때문이리라.
따지고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추억을 향한 애꿎은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몇 십 년 전의 삶을 담은 드라마나 노래에 환호하는 것을 ‘복고 열풍’이나 ‘추억 팔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는 어쩌면 매일 매일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이미 한 번 소개한 작가의 책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나, 하나만의 이유는 아니다. 박완서라는 작가의 글이 가지고 있는 순하지만, 동시에 매서운 힘을 새삼 느끼고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매정한 시대에 그의 글이 가지고 있는 따스함과 처연함과 무심함이 사무치기 때문이다.
작가 김훈의 부친은 시대의 불의에 끝내 섞이지 못하고 스러진 지식인, 혹은 지극한 선비의 삶을 살아냈다. 덕분에 김훈은 어린 나이에 무참함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무참함이 그의 손에서 종이로 옮겨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 덕을 톡톡히 입고 있다.
김훈의 부친과 비교한다면 박완서의 삶이나 글은 어쩌면 간이 덜 배어 있는 싱거움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무난하고 무던하게 살아온 삶. 물론 남편과 자식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아내와 어머니의 삶을 감히 무던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작가의 삶은 특별히 그악스럽지도, 한없이 평안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어쩌면 작가의 글을 크게 소중히 생각지 않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명징한 글이 뿜어내는 환한 기운을 외면할 수 없었음에도, 이는 곰삭은 작가의 경륜과 지혜가 담긴 훌륭한 문장일 뿐, 피와 눈물과 정의가 담겨 있는 뜨거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도 결국 늙어가게 되고, 그 사이 지혜와 현명까지는 못되겠지만, 점차 어떠한 방향으로 변하게 되는 것일까. 시간이 갈수록 작가의 글이 소중하고 또 고맙게 여겨진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불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감, 이름도 없이 스러져가는 내 이웃들의 아픔을 피와 눈물로 써내려간 글 역시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하지만, 세상을 한없이 따뜻하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보려 한 작가의 ‘싱거움’도 이제 더 이상 싱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깊고 맵다.
죽어가는 벗과 그 곁에서 새로이 꿈틀거리는 어린 생명 앞에 절로 ‘세상에 예쁜 것’ 감탄이 나오는 삶. 크게 서럽지도 크게 기쁘지도 않게 그렇게 편안히 삶을 바라보고, 또 사랑할 수 있는 힘.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이고 그립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 더 많구나, 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주어진 삶을 부지런히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태와 무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후려치고, 아집과 교만은 순간마다 내 등을 서늘하게 적신다. 건방진 말 한마디와 독기서린 한 문장의 글만으로도, 나는 그 얼마나 무서운 짓을 저지르는 것인가. 나의 말과 글 속에 담긴 독기와 분노가 행여 다른 이의 마음을 비틀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입과 손을 놀린다는 것의 엄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잡고 다잡게 한다. 내 연약하고 흔들림 많은 마음을.
무작정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무작정 우리는 살 만하다고 작가는 말하지 않았다. 쓰지 않았다. 그도 크나 큰 고통을 겪었고, 크게 미워하고 역정을 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사랑하는 이들로 아름다웠고, 때문에 태어남을 다행이라 여겼다.
내가 살아가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고, 울 수 있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 오늘도 아귀아귀 밥을 먹고 시원하게 트림을 할 수 있고, 내일은 들입다 술을 퍼마시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어설프게 시대를 불평할 수 있다는 사실. 잠든 아이의 조그만 발가락을 살며시 잡으며, 그렇게 하찮은 속울음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늙어가는 어미와 아비의 뒷모습에 낯설게 슬퍼할 수 있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의 애틋함, 아름다움을 그저 고마워 할 수 있다는 사실.
온통 억울한 사람 천지이고, 무서운 일뿐이다. 사람 탈을 쓰고 어찌 저럴 수 있을까, 가슴 쓸어내리게 하는 일들도 숱하게 벌어진다. 이 세상은 지옥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꾸역꾸역 입안에 주어진 양식을 집어넣으며, 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그리고 내일도 오늘처럼 무사하리라는 막연함으로 하루를 끝내 살아간다. 그 시간 속에 사랑이 없다면,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히 살아낼 수 있을까.
누구나 깊은 산 중에서 반갑게 만나는 옹달샘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보드라운 흙을 만지며, 그 속에 겸손하고 감사하며, 그렇게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군가와 살아갈 수는 있다. 그 삶이 생각보다 하찮지 않음을 차츰 깨달아가면서.
나의 보잘 것 없는 업이 있는지라, 산문집에 담겨 있는, 2008년에 작가가 쓴, 고향 개성에 대한 글이 눈에 밟힌다. 그의 고향은 지금도 여전히 푸르고 또한 사무치리라. 아름다운 작가를 둔 우리는 행복하다. 때로는 김훈의 무참한 아름다움과 삶의 또렷한 현실성을 절감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박완서가, 아니 자주 박완서를 살펴볼 일이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6·25 전까지만 해도 개성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이남 땅이었지만 전쟁과 휴전을 거치면서 휴전선 이북의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고향 풍경은 내 스무 살까지의 마을 풍경이고, 그동안 쌓인 그리움이 더욱 우리 시골을 이상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리움은 곰삭아 한이 되었다. 한이 풀릴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관광객이 자가용으로 휴전선을 넘는 걸 보면서 가슴이 다 울렁거렸다. 개성에 관광 갔다가 한두 시간 정도 말미를 얻어 내 고향 마을 박적골에 다녀올 수 있는 날을, 그런 꿈같은 날을 내 생전에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그 생각만 하면 좀 더 오래 살아 그날을 꼭 보고 싶다.”
※ 이 글은 통일뉴스와 함께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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