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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를 위하여

그녀가 초경을 시작하면 더 이상 사원에서 살 수가 없다. 이인형처럼 갇혀 키워진 쿠마리의 불행한 삶의 모습이 타국의 낯선 전통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사진=다음 블로그 '지구촌 365일' 그린인

힌두교에는 3억 3000만이 넘는 신이 있다고 한다. 그중 고대 여신 ‘탈레주’의 살아있는 화신이 ‘쿠마리’다.
옛날 네팔의 왕이 미모의 여신 탈레주를 모시다가 그녀의 매력에 반해 하루는 그만 그녀를 범하려고 했다. 화가 난 탈레주는 하늘로 올라가고 왕국에는 재앙이 그치지 않았다.

잘못을 뉘우친 왕의 간곡한 기도에 감복한 여신은 그녀가 제시하는 조건에 부합되는 아이 중, 적합한 절차를 통과한 여자 아이를 선정해 자신을 대신하게 했다. 그 여자 아이를 ‘쿠마리’라 한다.
쿠마리는 부모가 살아 있고 몸에 상처가 난 적이 없는 4~5세의 여아 가운데 32여 가지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설발한다. 힌두교도와 불교도가 섞여 있는 네팔국민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쿠마리를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고 있다.

카트만두의 쿠마리 사원에는 쿠마리의 미소를 보기 위하여 수 많은 순례객이 찾아드는데,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만 순례객들에게 얼굴을 내밀고 나머지 시간은 사원 안에서 경전을 읽으며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가 초경을 시작하면 더 이상 사원에서 살 수가 없다. 또 그녀와 결혼을 하면 불행해진다는 신앙 때문에 대개의 쿠마리들은 외롭게 일생을 마친다.

최근 들어 이러한 전통은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쿠마리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관광상품화되어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TV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시피, 요즘은 쿠마리들도 영어 수업을 받는 등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1757년부터 이어진 쿠마리의 전통을 네팔인들은 앞으로 현대사회와 어떻게 융화시켜 나갈 수 있을까.

10 살도 채 안 된 쿠마리의 미소를 받으면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네팔인들. 종교적 신념과 현대 자본주의의 경계에 선 그들을 보며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다.

인형처럼 갇혀 키워진 쿠마리의 불행한 삶의 모습이 타국의 낯선 전통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우리 나라 어린 아이들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과연 초등 학생 중 몇 프로 정도가 ‘꿈’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까. 십 대 아이들 중에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문제는 아이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꿈’이라는 것이, 현재 이 땅에서는 너무 불온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거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라고 물었을 때, 되고 싶은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행운아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교육환경, 뭐 하나 부족할 새라 미리 넘치게 채워주는 과잉된 사랑, 하나 뿐인 정답이 관건인 입학 시험. 물론 7차 교육개정 이후 ‘생각과 토론하기’에 교육의 초점을 맞추었다고는 하나, 아이들과 학부모에게는 수도 없이 바뀌는 입시행정이 오히려 버겁다.

우리 사회의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을까. 이 팍팍한 교육을 받을 기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필자 역시 기성의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짙은 화장의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어린 쿠마리.
그녀의 발에 입 맞추며 실은 자신의 행운을 비는 순례객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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