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것에 대한 無禮와 깊은 슬픔
"무식한 것들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을 바꿔 '지키기 위해' 무식과 용감을 써라. 제발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라."
오랜 것에 대한 무례(無禮)와 깊은 슬픔
-경남 통영시, 소반 장인 100년 된 공방 강제 철거 논란
-윤이상 팔아 520억짜리 음악당 짓고, 생가 터는 없애려는 통영시
우리는 오랜 된 것에 대한 예의가 없다.
통영뿐만 아니다. 전국이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오래 된 것을 국가와 지자체가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30년 전 과거에는 오랜 것을 파괴하는 데 혈안이 돼 있던 터라 보호, 보존, 보전 등과 같은 낱말은 씨도 안 먹던 때였다. 당연히 이 같은 입장이나 주장은 공염불이자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제는 시절이 변했다.
오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을 찾는 일은 무척 어렵다. 이는 곧 흔적의 기억이 기억의 흔적으로만 남는다는 매우 시급한 위기다. 기억상실을 겪을 수밖에 없는 매우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국가와 지자체는 바보들의 행진만 찾는다.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중요성도, 필요성도, 우선순위도 모른다. 그나마 이를 아는 이가 말을 해줘도 방귀만 뀌는 일이 허다하다.
무식한 것들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을 바꿔 ‘지키기 위해’ 무식과 용감을 써라. 제발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라.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말한다. 창조경제, 오랜 된 것을 지키기만 잘 해도 수십 아니 수백 년을 위한 창조경제는 이미 확실하게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오래 된 것에 대한 예의 없음은 뼈가 바스러지는 깊은 슬픔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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