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텃밭] 12월 21일
“X식이 녀석, 아주 열심히 사는 예쁜 놈이야. 그리고 우리 천사가 된 쪼식이의 단 하나밖에 없는 인간 친 형님이기도 하고. 이 녀석만 우리 강아지에게 형님으로 불린 이유가 뭐냐고? 이유는 단순해. 첫 글자와 끝 자가 똑같은 돌림자였으니까. 정쪼식, 정x식. 그러고 보니 벌써 12월 21일이네”
12월 21일
소운 정유림
자식마냥 애지중지 키우던 녀석이 있었어 지 엄마 성을 따라 정쪼식 자기도 당연히 사람이라 여기던 쪼식이는 남자는 전부다 삼촌, 여자는 거의 다 이모로 알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 성과 이름 끝 자가 같은 한 동생 녀석은 형님으로 알고 지냈지.
강아지가 교통사고로 천사가 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어 매서운 칼바람이 매몰차게 불어대던 늦은 시간 오랫 만에 쪼식이의 형님이자 동생인 X식이가 찾아왔어. 우린 조그만 천사 녀석이 떠난 텅 빈 자리에 앉아서 지난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지. X식이에겐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술 한 잔 하자며 전화가 왔었대. 정신없이 바빠서 건성으로 그래 언제 한번 보자며 전화를 끊었고 그 이후로도 다시 보고 싶다면서 전화가 왔었지만 일에 치어 그래 곧 보자면서 잊고 말았지.
여전히 업무로 바빴던 수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에 연락이 와서 또 술 한 잔 하자, 보고 싶다고 전화가 왔었지만 그때는 너무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응 담 번에 연락할게 그때 마시자”고 흘려버렸었대. 그리고는 잊었고. 한 6개월 후쯤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 와서 보통 때는 안 받았었는데 어찌하다보니 받게 되었대. 전화를 받자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대.
“오빠! 저 아무개 오빠 동생 누구에여!”
“어? 그래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니?”
“오빠랑 통화하는데 6개월 걸렸어요!”
순간 x식이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무슨 일이야? 아무개는?”
“오빠는 6개월 전에 떠났어요ᆢ 자살.”
놀란 x식이는 부랴부랴 정신없이 친구의 여동생을 만났고 같이 그곳 공원묘지로 찾아갔대. 너무나 미안해서. 그때 술 한 잔을 같이 먹어줬으면 아니, 그냥 만나기라도 했다면, 이 녀석이 이런 모습으로 조그만 상자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진 않았을 텐데, 술 한 잔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던 친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조그만 박스 속 새겨진 이름으로만 남아있었지
한참을 넋 놓고 쳐다보다가 뭔가 뒷통수 쪽의 서늘한 느낌에 휙 하고 뒤를 돌아다봤는데 그 맞은편 박스 안에 놓인 어떤 사람의 자리, 거기서 그 이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거야! ‘고 정x식’ 친구의 맞은편에는 x식이와 동명이인인 어떠한 사람의 자리가 마주보고 있었대. 옆에 있던 친구의 여동생에게 손가락으로 맞은편을 가리키며 말했지. “아무개는 외롭지 않을 거야 내가 저기 있으니까.”
(…)
죄책감 같은 거 마음속에서 보내주라고 그 감정조차도 안아주라고 했어. 그 친구는 거기까지가 운명이었던 거고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 못 되고 약한 생각이었지만 그 선택조차도 존중해주라고 그리고 다른 세상의 친구가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거라고. 지금은 서로가 같지만 또 다른 세상에서 너와동명이인인 친구가 함께 해주고 훗날 하늘부름 받을 때 그때 가서 또 같이 놀아주면 더 좋아할 거라고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도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고.
그런데 이 녀석 갑자기 “누나…” 하면서 울기 시작한 거야. 주체할 수 없이 눈에서 물이 나왔었나봐. 다 큰 녀석이 어린애처럼 엉엉 울더라구 나름 강의도 나가고 회사도 해외로 키우고 하는 녀석인데 말야. 실은 나도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었어 아마 누구나 한 번 씩은 그런 경험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난 말이지 ᆢ누군가 보고 싶다 불러주면 그게 고마워서 어디든 달려갔었는데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제약이 많아져서 그런가?
내가 원할 때는 아무도 부를 사람도 와주는 사람도 없는 거야. 이 죽일 놈의 고독, 심심함 기타 등등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독하고 고약한 이놈의 외로움 때문에 옆에 아무도 없음에 살고 싶지 않아질 때 혼자 힘으로 어찌 하지 못할 때, 그때 전화를 들고 누군가를 찾게 되잖아.
술이 마시고 싶어서 밥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날 이해하고 받아줄 친구가 그리울 뿐인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친구 하나가 하필이면 그 날 없는 거지. 정말이지 ‘아, 난 그동안 인생 헛살았구나’ 그만 살고 싶었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 ‘난 누구에게든 그런 사람이 돼 주고 싶다.
누구든 가도 되냐는 물음에는 무조건 오라고 일단 대답부터 하는 그런 사람. 모두에게 외면당했다는 생각에 너무도 외로워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거든. 큰일 날 뻔 했지. 외로움이 깊어지면 그것도 병이 되니까. 난 그냥 힘들지만 누구든 찾으면 무조건 오라고 하는 그런 친구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야.
X식이 녀석 아주 열심히 사는 예쁜 놈이야. 그리고 우리 천사가 된 쪼식이의 단 하나밖에 없는 인간 친 형님이기도 하고. 이 녀석만 우리 강아지에게 형님으로 불린 이유가 뭐냐고? 이유는 단순해 첫 글자와 끝 자가 똑같은 돌림자였으니까. 정쪼식 정x식. 그러고 보니 벌써 12월 21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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