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규, 우리 시대를 위한 전위예술가
"문정규 작가와 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 前衛藝術)다. 전위예술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면에서 볼 때 그의 전위와 예술은 ‘경계 허물기 또는 경계 넘나듦’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정규 작가
우리 시대를 위한 전위 예술가
문정규(62)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가’로 유명하다. 1984년 5월 16일 대전 공간사랑에서 개최한 첫 개인 초대전인 ‘매체로서의 오브제전’ 이래 개인전 및 개인 초대전 39회와 단체 초대전과 기획전 횟수만 800회가 넘는다. 2018년 6월에는 마흔 번째 개인 초대전을 개최한다. 40회 개인 초대전 주제는 ‘소망’이라는 내용으로 6월 7일(목)부터 20일(수)까지 대전 우연갤러리에서 2주 동안 전시한다. 문 작가에게는 화가뿐만 아니라 퍼포먼스(행위예술) 작가,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예술가, 설치 작가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그는 우리나라 2세대 행위예술가다. 1950~60년대 초기 해프닝, 이벤트 세대 작가가 전위예술가 1세대에 속하고, 1970~80년대 한국에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를 정착시킨 세대를 전위예술가 2세대로 분류한다. 문 작가는 2014년 8월 5일 대전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다. 2018년 1월 5일 저녁 대전, 최근 이사한 작업실 문정규미술창작실(대전광역시 중구 보문로 182-1)에서 문 작가를 다시 만났다. 이 글에는 2014년 인터뷰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행위예술과 퍼포먼스 아트
한국과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부르는 ‘행위예술(行爲藝術)’은 예술에 다양한 장르인 미술, 음악, 연극 등의 표현 매체를 사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전위 미술가들 1세대와 2세대가 이룩한 업적이라는 측면에서 ‘행위미술’로 부르고 있다.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는 동양에서 중국과 일본, 서양에서는 유럽 등에서 정확하게 명명되지 않은 상태로 진화했고 1960년대 중반에 명명됐다. 또 한국의 전위예술가는 총체적으로 퍼포먼스 아트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퍼포먼스 아트를 단적으로 말한다면, 예컨대 축구 경기에서 결과를 알 수 없듯이, 공연예술이지만 시나리오가 없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 과정예술)며 토탈 아트(Total Art, 종합예술)라 할 수 있다.
월간미술(Monthly Art)이 ‘미술용어 톺아보기’에서 미술 분야에서 설명한 내용을 보면 ‘회화나 조각 등의 작품에 의하지 않고 미술가의 육체적 행동이나 행위에 의해 어떤 조형 표현을 하고자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구글(google) 사전은 ‘행위의 시간적 과정을 중시해서 실제 관중 앞에서 예정된 코스를 실연(實演)해 보이는 다양한 예술 행위의 총칭’으로 설명한다. 특히, ‘미술에서는 회화나 조각 작품 등에 의하지 않고 작가의 육체적 행동이나 행위에 의해 어떤 조형적 표현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위키백과는 ‘Performance Art’를 ‘비주얼 아트(Visual Arts), 퍼포먼스 아트(Performing Arts), 아트 퍼포먼스(Art Performance)’를 함께 쓰고 있으며, 관객에게 보여주는 공연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또 ‘육체의 행위를 음악·영상·사진 등을 통해 표현하며 1970년대에 시작된 예술 양식’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학문 연구, 미술교육학 차원에서 퍼포먼스를 다루는 게 아니므로 개념이나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행위미술’보다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해 ‘행위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한다.
리얼리티 강조한 소통의 극대화
김재권 박사(조형예술학, 미술이론)는 2006년 10월 갤러리 영에서 개최한 ‘문정규 초대전’ 서문에서 “문 작가의 퍼포먼스 작업은 ‘리얼리티(reality)’를 강조한 소통의 극대화”라고 표현했다. 김 박사는 “작가 문정규는 한국의 제2세대 퍼포머(Performer) 중 대표적인 작가 군(群)에 속한다”며 “그가 지금까지 30여 년이 넘게 110편 이상의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또 “문 작가에게 퍼포먼스는 사고(思考)의 방법이자 행동 방식”이라며 “문정규의 퍼포먼스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규정이나 규칙들을 재조정’하는 것으로, ‘삶과 죽음’, ‘사랑과 기쁨’, ‘왜곡과 편견’ 등에 관계되는 것들을 찾아내어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 기능으로 작용시킨다. 그래서 그의 퍼포먼스 작업은 언제나 수많은 관객과 함께 스캔들적 사건을 몰고 다니며 ‘전통과 개혁의 싸움터’를 만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문정규 퍼포먼스 작업 요약 및 설명 김재권 조형예술학 박사(미술이론) 인간의 삶에 대한 진술로서의 퍼포먼스 “신체를 하얗게 특수분장해 등장하도록 하거나 「2001년 천국과 지옥, 대전시립미술관」, 숟가락을 용접시켜 만든 총(銃)을 손에 들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Food War」(식량전쟁)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94년 유성온천 문화제 퍼포먼스」도 비슷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일상적인 삶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행태(行態)를 자신의 의식을 통해 진술함으로써 관객과의 동질성을 검증해가는 것이며 이러한 동질성 자체가 철학적, 비평적 또는 언어 변형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작용한다.” 상황 분석으로서의 퍼포먼스 “인간 존재가 변형화된 행위로서의 퍼포먼스인데 그의 작품에 관객을 참여시켜 끈으로 묶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자유에 대한 속박’ 같은 하나의 예시적인 행위며, 사회적 상황을 참조 시스템으로 해서 비평적 어휘를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의태성의 강조 현상’이다. 마치 본 것을 재현하는 것처럼 실제 모델이 퍼포먼스에 들어와서 집단적 상황(situation)과 프로세스를 양산하는 형태다. 이는 사실과 다른, 또 다른 리얼리티에 대한 ‘번역’ 또는 ‘재구성한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다.” |
아방가르드(전위예술) 대표 작가
문정규 작가와 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 前衛藝術)다. 전위예술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면에서 볼 때 그의 전위와 예술은 ‘경계 허물기 또는 경계 넘나듦’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 작가는 ‘아방가르드’가 ‘선발대’(Vanguard) 뜻을 갖고 있듯이 작업 과정에 행위의 표현어법을 넣음으로써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요소를 묶어 하나의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데 탁월한 면을 보여준다. 사람의 행위와 조형(造形)의 만남에서 소통, 이미지,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시간과 공간에 새로운 것을 넣는 작업이고 이 작업 과정은 사람이나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
김재권 박사는 이와 관련해 “문정규는 자유와 구속-끈, 관습-옷, 죽음-시체 등을 통해 사람에 관한 여러 조건을 대상으로 무장해제를 단행하는데, 이 경우 그의 예술적 대상(object)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작용해 인간과 예술의 밑바닥에 깔린 여러 관계 조직을 끌어 올려 관객과 공모하는 것을 바탕으로 무장해제를 위한 한바탕 테러 행위를 자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묶는 작업은 자유에 대한 속박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 세계에 대한 관계 설정이며, 죽음 역시 대상이 아닌 현상으로 작용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적 규정을 찾아 낸다”고 보았다.
문 작가를 행위예술과 전위예술로 설명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예술은 삶의 표현이요, 앎의 표현이다’는 말은 뜻이 깊은 실마리다. 문 작가는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고 사람과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물음으로써 우리가 생각할 수 없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삶, 사물, 제도, 이념 등을 새롭게 깨닫게 하는 역할, 그 역할을 물음표를 바탕으로 한 예술 작업이 해왔던 것이다.
김재권 박사는 문 작가의 이 같은 예술 작업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고 새로운 예술의 변화를 찾으려는 예술가라며 ‘진정한 아방가르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화랑 작가와 미술관 작가와의 구분이 불분명해진 채 상업화랑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미술관에서도 우대받는 웃지 못 할 난센스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 박사는 이어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는 문화는 발전하지 못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역사상 위대한 예술 작품은 개인적인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대상 생산이 아니라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삶에 대한 문제 제기 기능으로서의 리얼리티 반영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
문정규 작가는 대전에 작업실을 두고 국내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40년 넘게 창작 활동을 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표현 형식이 있는 화풍(畵風)을 만들었고 지금은 서양화 중견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한국전위예술사로 보면, ‘80년대 퍼포먼스 아트’를 한국에 정착시킨 중요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로 기록하는 이유일 것이다.
문 작가는 예술 활동의 시작점부터 기존 예술 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해왔으며 그만의 실험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를 작품 세계에 반영해왔다. 평단에서도 이 점을 높게 인정했다. 그리고 명신대학교 한국미술과 교수와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제현대미술협회 대한민국회장, 아시아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문 작가는 이동훈 미술상 특별상, 문화체육부장관상, 환경부장관상 등을 수상했으며, 『문정규, 아방가르드의 시공간 여행』 등의 여러 책도 출간했다.
문 작가 작품에는 독특한 특징인 ‘액자(額子)’가 등장한다. 그는 ‘액자’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활용한 대표적 작가다. 액자라는 기존 관념을 낯설게 표현한다. 그가 설명하는 액자의 의미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핵심이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액자’는 고정관념과 탈(脫) 고정관념 사이의 경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경계’라 함은 개인적인 생각, 인식, 습득한 모든 고정관념의 경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인간과 문명,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물질 등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경계를 지칭한다. 달리 말하면, 여기에서 경계는 개인적 생각, 인식, 습득된 모든 고정관념을 통칭한다.”
문 작가는 ‘그림의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액자를 ‘그림의 내부’로 옮겨놓음으로써 액자라는 기존 관념을 낯설게 만든다. 즉, 그는 작품의 프레임에 대한 기존의 지각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화면 구성을 새롭게 추구하는 방식이다. 이는 환상과 실제 사이에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예술=환상=실제’라는 등식이 성립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의 공동체의식이 해체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자기성찰을 제시하며 밝고 행복한 공동체 모습을 꿈꾸는 뜻을 작품에 담고 있다.
문정규 작가에게 퍼포먼스란 과연 무엇일까. 관객과의 소통을 극대화한 퍼포먼스를 펼쳐온 한국의 제2세대 퍼포머(Performer) 중 대표적 작가인 그는 퍼포먼스 작업을 그의 ‘사고하는 방법이자 행동 방식이며 메시지’라고 명명한다.
퍼포먼스는 ‘사고 방법’이자 ‘행동 방식’
“내게 있어 퍼포먼스는 사고의 방법이자 행동 방식이다. 즉,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규정이나 규칙을 재조정함으로써 삶과 죽음, 사랑과 기쁨, 왜곡과 편견 등에 관계되는 것들을 찾아내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퍼포먼스 작업은 언제나 수많은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전통과 개혁의 싸움터’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문정규 작가는 퍼포먼스 작업에서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상황에서 예술적 개념을 찾고, 이를 행위를 통해 자서전적 어휘로 전개한다. 그것은 자신의 메시지를 신체 행위를 통해 작가가 사고한 바를 관객의 의식 속에 충격파를 던지는 매력을 갖고 있다.
또한 그가 퍼포먼스 작업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리얼리티를 강조해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을 극대화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 삶에 대한 진술로서의 퍼포먼스’와 ‘상황 분석으로서의 퍼포먼스’를 병행한다. 관객은 문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고의 폭을 넓히고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동시에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퍼포먼스 아트는 예술가와 관객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줘야 하며 리얼리티를 구체화해 예술적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철학적, 비평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작용해야 한다. 따라서 예술가는 관객의 사고와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예술 본연의 기능에 한 발 더 다가서야 할 것이다.”
문 작가는 오랜 세월 동안 기존의 예술 형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안했다. 그는 지금도 ‘새로움을 향한 실험 정신’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다음은 문 작가와 나눈 이야기와 인터뷰를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미술을 하겠다는 생각은 언제 했나?
초등학교 때 학교보다는 만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미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당시 미술 교사의 제안으로 그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나?
새벽에 일어나 산책이나 가벼운 산행을 한 후 아침밥을 먹는다. 작업에 집중해야 할 때는 하루에 보통 12~14시간 작업을 한다. 식사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에 투자한다. 작업은, 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것은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보다 꽃밭에 물을 주듯이, 농부가 생명체를 기르는 느낌으로 작업을 한다.
회화와 행위예술의 차이 ‘건드림’
▲회화와 행위예술의 차이는 무엇으로 봐야 하나?
회화는 하나의 대상으로 존재하지만 행위는 그렇지 않다. 행위는 ‘과정예술’이다. 행위는 회화가 할 수 없는 메시지를 직접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행위예술은 사고의 게으름을 깨우고 더 나아가 행위예술가는 가장 치열하게 사고를 건드리는 예술가다. 이 건드림은 인간의 삶을 비롯해 전반적인 것을 건드린다. 아울러 행위예술은 모든 예술이 종합돼 있는 장르다.
▲행위예술가의 삶처럼 작품에 ‘액자’가 들어 있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2015년에 본 개인전 ‘소망, 안과 밖, 넘나듦, 절편회화’는 인상 깊은 전시회로 기억하고 있다. 액자를 이용한 작품을 보면서 기존과 다른 방식, 낯설게 표현하기, 새로운 형식 등 독특한 화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을 시작할 때 늘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했다. 행위예술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뜻에서 아방가르드도 같은 맥락이다. ‘소망, 안과 밖, 넘나듦, 절편회화’에서 보여준 회화 작품은 1998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던 것이다. 보통 액자는 그림의 가장자리에 존재한다. 하지만 액자, 즉 프레임을 그림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액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새롭기 때문에 낯선 것이다. 그림을 신체로 생각하면 액자는 ‘그림의 의상’의 개념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액자는 ‘그림의 의상’ 개념”
▲그림을 위한 ‘그림의 의상’, 멋진 표현이다. 그런데 그림에 꽃, 나비, 사람이 등장한다.
액자를 사용한 스타일 작품인데, 그림에 있는 꽃이 액자 밖으로 튀어나오게 함으로써 환상과 실제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예술=환상=실제’라는 등식이 성립하도록 만든 작품이다. 액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꽃은 ‘행복 에너지’, 그림 밖 벽면에 액자 밖으로 나온 꽃을 향해 속도감 있게 날고 있는 나비는 ‘행복을 듬뿍 가져다주는 전령’이다. 여기에 등장인물이 꽃, 나비와 만나게 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의 가치와 자아실현을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액자가 있는 그림, 왜 선택했고 왜 그리나?
액자는 어떤 경계다. 안과 밖, 넘나듦은 당장 소통이 어려울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시간이 지날수록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액자라는 틀은 수천 년 동안 사각형의 틀에 갇혀 있던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틀, 왜 이 틀을 풀어헤치지 못할까’, 하는 고민을 오래전, 그러니까 1988년 즈음에 시작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중첩, 반복을 고민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게 액자다. 액자는 곧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액자 자르기’는 ‘그림 자르기’인데, 이는 꽃과 나비의 넘나듦이다. 액자와 자르기 속에는 여러 의미가 숨어 있는 셈이다.
“인간 사회에 도움 주는 예술 필요”
▲경계, 고정관념 깨기를 넘나듦의 시선으로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우리가 흔히 하는 말처럼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도 가능할 것 같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 예술에서 넘나듦은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말로 생각할 수 있다. 도덕의 기준에서 보면 비도덕도 나올 수 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왜 국가가 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제도’로 묶어놓는가? 물론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질 수 있다. 오래 전 과거와는 달라질 수 있는데,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다. 긍정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존재다. 과거의 관례, 준법 등 모든 게 21세기에는 달라질 수 있다. 때로는, 어떤 것은, 지금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할 것도 있다. 제4의 물결 시대 아닌가.
▲오랫동안 미술 분야에 계셨던 만큼 미술계에 하고 싶은 말씀도 있을 것 같다.
미술은 정체성이 있다. 많은 작가가 예술 작품이라며 작품을 내놓는다. 그런데 작품인데 작품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예술이라는 본질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는 예술을 프로슈머(prosumer, ‘생비자(生費者)’라고 부르는데,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며, 생산 소비자 또는 참여형 소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작품이 아닌 작품은 작가 차원에서 봐도 문제다.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예술론, 미학, 철학을 갖고 인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작품이나 예술에 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이라고 말하면 미술, 예술을 망치게 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있잖은가. 정치는 정치인이, 교육은 교사가, 아이는 부모가 망친다고 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은 예술가가 망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 있나?
나의 삶이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하는 것, 이게 나의 모토라고 말한다. 참 좋은 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첫 만남이 10년 같은 사람이 있다. 오래된 만남, 이런 만남은 기(氣), 마음, 직관 등이 맞는 사람이다. ‘시간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는 말도 좋아한다.
문정규, 사고(思考) 방법으로서의 예술행위에 대하여 김재권 조형예술학 박사(미술이론) 문정규 하면 우선 떠오르는 어휘들이 있다. 전위예술가, 화가, 행위예술가, 설치작가 등이 그것이다. 이는 작가 문정규가 한사람의 화가이거나 퍼포머가 아닌, 문자 그대로 한 사람의 아티스트(Artist)이기 때문이다. 흔히 한 작가를 규정할 때 체질과 능력, 그리고 열정을 거론하게 된다. 즉 작가는 자신의 체질과 능력 범위 내에서 창조적 역량이 결정되고, 이것이 열정을 통해서 작가적 총량으로 계량(計量)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문정규의 작가적 총량은 함량이 오버된다. 일찍이 필자는 문정규를 ‘전방위 예술가’, ‘학제(學際)적인 예술가’로 명명(命名)한 바 있다. 즉 그는 회화, 입체, 설치, 퍼포먼스 등 장르와 장르사이, 매체와 매체 사이의 벽을 허물고 작업을 해옴으로써 이른바 ‘예술의 원룸’에서 살고 있는 작가다. 그래서 그의 이와 같은 예술행위를 따로 따로 떼어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즉 그의 평면 작업이 사고(思考)의 방법으로서의 예술 행위인 대상을 통한 공간 확장이라면, 그의 입체나 설치 작업은 사고가 매체를 통해 프로세스화(化)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의 퍼포먼스는 사고가 직접적인 소통(커뮤니케이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정규의 작품은 사고와 연관되어 있어 ‘생각하게 하는 대상(Objet)’이지, 바라보고 즐기는 관조(觀照)의 대상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열려진 사고를 통해 통찰력을 일깨워 주는 대상으로써, 예술의 기능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인간의 사고를 넓혀주는’ 임무를 완수해 왔다. 이는 문정규가 예술을 형태 분석으로부터 탈출시켜 공간(평면작업)이나 상황(퍼포먼스)에 대한 문제 제기 기능으로 놓이게 하는 것으로써, 그의 작품들은 정신적이거나 이념적인 면을 강조하는 개념적인 경향의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문정규와 평면 문정규의 회화 작업은 리얼리티를 가장(假裝)한 환상(illusion)을 공간에 적응시켜 환상과 실제(reality)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예술=환상=실제’라는 등식을 성립시킨다. 그의 대표작 시리즈인 「안과 밖에서」는 1985년 「탈의실」이라는 작품이 단서가 되어 출발한다. 여기서 문정규는 ‘까드르(Cadre)’라고 하는 틀(액자) 대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이 액자를 재현해놓고 액자 밖에 있는 벽지와 명제표까지 리얼하게 제시한 상태에서 액자 안 캔버스에 그려진 대상(여자, 꽃, 나비, 깃털 등)이 액자 밖으로 연계되어 있어 액자의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지게 하는데, 전시장에 이러한 작품이 걸렸을 때 안과 밖의 이미지들에 의한 피드백(feed back) 현상이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일어나 작품 자체의 틀 밖에 있는 전시 공간까지도 작품으로 수용되어 버린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그려진 규격(공간) 자체를 벗어나 전시 공간까지를 통합(integration)하는 환경 개념을 지닌 작품으로 확대 발전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정규 회화의 ‘대상 확장을 통한 공간 확장’ 현상이다. 이와는 별도로 「자연으로부터, 1998」 시리즈 작업과 「내포와 외연(관계), 2006」 시리즈 작업은 화폭공간을 분할해 관계성에 의한 두 가지 이미지들(누드와 꽃, 나뭇가지와 잠자리, 수풀과 딱정벌레, 소용돌이치는 원과 구름, 1998) 등의 이항적(二項的) 대립을 통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장(場)을 만들어 간다. 말하자면 그의 「안과 밖에서」 시리즈 작업이 캔버스의 안과 밖이라는 관계성을 동시에 추구한 것들이라면, 이 시리즈 작업들은 캔버스 안이라고 하는 내부 공간에서의 관계성을 등가적(等價的)으로 구축하고 있다. 그 외 「성찰, 행복, 고독, 2004」 시리즈 작업은 이미지와 언어적 텍스트와의 관계성을 추구하고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즉 남, 여의 누드 이미지 위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문구를 써 넣음으로써 개념미술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문정규 드로잉 작업은 지금까지 화화 작업에서 볼 수 있었던 이미지를 통한 공간의 관계성이 아니라, 퍼포먼스를 위한 컨셉 드로잉이나, 프로젝트적인 성격을 지닌 것들이다. 그의 드로잉 작업은 퍼포먼스에 대한 개념 설정이나 공간 실현을 위한 리얼리티한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예술의 사회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연유로 그의 드로잉 작업에는 사진이미지(이 경우 대부분 퍼포먼스 행위 장면을 찍은 것들)를 이용한 작업들인데 과거부터 그가 퍼포먼스에서 주로 취급했던 상황을 드로잉 형태로 표현한 것들이다. 그러다가 어떤 작업들은 이 같은 경향을 지닌 독특한 이미지 작업으로 진화하기도 하는데 「움직임, 1996」과 「에너지, 1998」라고 명명한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또 어떤 것들은 「사각의 확장, 1987」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설치 작업으로 뻗어나가 회화적 조형성과 공간의 관계성을 동시에 추구하기도 한다. 그 외 입체작업에서는 입방체의 구조물에 회화 작품을 그려 넣어 설치한 작품이다. 명제 그대로 ‘평면인가? 입체인가?(1995)’라는 질문을 던져 주기도 하고, 살아있는 은사시나무에서 눈을 발견해 그것을 포토 데칼코마니로 제시하거나(1991), 나무 그림자에 낙엽을 올려놓기도 하고(1992), 이끼와 낙엽을 나무의 나이테 모양으로 설치(1996)하는 등 행위의 결과가 작품으로 연계되는 프로세스 작업도 있다. 문정규와 퍼포먼스 문정규의 퍼포먼스 작업은 한국미술사에서 그 의의를 지닐 정도로 유래가 깊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왜냐면 그는 ‘한국의 2세대 퍼포머(Performer) 중 대표적 작가군’(문정규의 경우 2세대라고 하나 1세대 작가들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퍼포먼스를 시작했음-필자註)에 속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30년 넘게 112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문정규의 퍼포먼스 역시 사고의 방법이자 작가로서의 이념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 방식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관계성이나 구속(끈)을 내용으로 한 「관계」(1989년 나우갤러리와 1987년 충남대학교, 군산대학교, 1996년 다다갤러리), 낡은 규정들(틀), 자유에 대한 속박(철조망) 「범주」(1994), 성(性)적 질문(누드), 「반미학」(1995), 「원조교제」(1996), 전쟁이나 테러(포크로 만든 총), 「포스트모던 가족」(1994, 부산문예회관), 「음식전쟁」(1996, 홍인갤러리) 등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 제기 기능으로 놓이는 것들이다. 이 같은 그의 행위예술은 인간에 대한 규정적 허구를 탄핵하거나 파기하기 위한 ‘문화적 행위로서의 단편’으로 정리할 수 있으며, 그는 신체를 매개체로 공간과 연결된 리얼리티한 상황을 창조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퍼포먼스 작업은 자서전적 개인성을 발휘해 관객과 공모를 자행(?)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구성해 왔다. 그런 연유로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어디서나 스캔들적 사건(Event)이 꼬리를 물고 다녔다. 그리하여 문정규의 퍼포먼스는 의식적 무의식적 논증을 담은 개인 신화를 창조하게 된다. 여기에는 기계(자동차, 슬라이드, 전화기, 전기도구), 음향(육성 또는 음악, 그리고 효과음), 오브제(틀, 종이 십자가, 노끈, 테이프, 포크로 만든 총, 꽃바구니와 꽃가루), 안무, 무술, 언어 등을 사용해 공간과 시간을 통합하는 리얼리티한 상황을 창조하게 된다. 이렇듯 문정규의 작업은 평면, 입체, 설치, 행위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넓이로서의 다원화(多元化)된 창조 행위를 펼쳐 왔는바, 이는 그의 작가적 의식이 예술을 목적이나 결과가 아닌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한 하나의 질문과도 같이 사고해야 할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예술을 개인적인 자유’처럼 주장해 왔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작업은 역사나 관습에 대한 예속이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과 그 중심 영역을 확대 적용함으로써 얻어지는 프로세스들이며, 여기에 관객에 대한 거리, 시간, 농도를 재조정함으로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형성해 왔다. 돌이켜보건대 한국의 현대미술은 그 역사가 짧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시류에 영합해 시각적 아름다움만을 생산함으로써 ‘훌륭한 예술가=잘 팔리는 작가’라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그것도 지방에서, 진정한 아방가르드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정규는 그 오랜 시간을 용케도 잘 버텨왔다. 그러나 창조의 역사는 언제나 ‘NEW’(새로운 것)라고 하는 새로운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작가를 외면하지 못한다. 필자는 문정규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글을 맺고 싶다. ‘어이! 한국의 진정한 아방가르드 문정규! 계속해서 건투를 비네!’라고… |
문정규
1956년 출생. 충남고를 졸업하고 배재대 미술교육과와 충남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18년 4월 현재 개인전 및 초대전 39회를 비롯해 미술세계 커버 아티스트 특별초대전, 남한·북한·중국 대표작가전 등 총 800회 이상의 전시회에 참가했다. 명신대학교 한국미술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아시아 미술대전, 아카데미 미술대전 등 미술전 운영위원·운영위원장·심사위원을 맡았다. 화집(畫集) 『대한민국 현대미술작가총서』(미술세계, 2005, 서울), 『현대미술의 단면』(시리즈 4권, 경도국제예술기획, 1989~1998, 일본) 등을 출간했다. 이 외에 『문정규, 아방가르드의 시공간 여행』(미래디자인, 2009),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적 사고』(미래디자인, 2000), 『행위예술의 표현어법』(예광, 1997) 등의 단행본을 냈다. 엑스포 대전관, 원광대, 외국어대, DMC첨단산업센터, 화성테크윈, 밀양시청, 하나은행 등 기업, 학교, 공공기관 등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동훈미술상 특별상(2010), 환경미술제 환경부장관상(1997), 문화체육부장관상(1995)을 수상했다. 현재 대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 카페 ‘문정규 예술’, 페이스북, 페이스북 그룹 ‘문정규 예술의 매력’을 운영하고 있다. jkmoon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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