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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때문에 한반도 정체성 변했다”

DMZ에 생태와 평화 통로 열고, 남북한 철도 연결부터 당장 시작해야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113호

광복 70년, 한반도 통로를 열어 유라시아 시대를 선도하자

2015. 2. 6 (금)

분단체제가 묶어놓은 발전의 한계

광복 70년, 이는 우리가 일제 강점기의 두 배에 달하는 시간을 분단체제로 지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간 100년은 외세의 침략과 그 산물로 탄생한 국제정치적 구도가 한반도를 지배 한 시간이었다. 분단체제는 5000년 역사를 관통해온 한반도 문명의 대륙 정체성에 변화를 가져 왔다.

DMZ는 남북한을 단절시킨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의 가교인 한반도에 근본적인 제약을 가해왔다. 분단으로 인해 한국은 오로지 해양의 물류체계에 의지해 발전을 추구해야만 했다.

육로로 단숨에 갈 수 있는 중국의 동북부는 비행기를 타고 돌아서 가야만 하며, 막대한 천연자원과 성장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시장은 육상과 해상의 교통체계로는 모두 접근할 수 없다.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부산항의 물류체계는 대륙으로 나아 갈 수 없고, 북한의 선박은 우리 영해를 멀리 돌아야만 해양으로 나갈 수 있다.

지난 시간 남북한은 분단체제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각기 상이한 방식의 근대화를 추구했다. 한국은 개발독재와 압축적 성장을, 북한은 사회주의 산업화를 모색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비약적 성장을 이룬 한국과 실패한 위기국가 북한을 목도하고 있다.

한국의 성공 그 이면에는 분단체제로부터 비롯되는 다른 모습들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이혼율, 최저 수준의 출산율,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취약한 복지체계 모두 분단체제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OECD 최고 수준의 사회갈등도 분단체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기아와 인권의 사각지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구조적 경제위기 등 총체적 인간안보 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오늘 역시 분단체제의 다른 모습이다.
분단체제에서 진행된 성장모델은 이제 남이나 북이나 다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으며, 민족 전체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멘텀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역동성

지난 100년간 미국과 일본 등 해양세력들은 급속한 발전을 통해 세계문명을 주도해왔다. 세계적인 냉전구조는 동북아에서 대륙과 해양세력간의 대결구조를 형성했으며, 한반도는 그 최전선을 형성했다. 해양은 한국 국가발전의 유일한 생명줄이었으며, 유라시아로 가는 길은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DMZ에 가로막혀 접근이 어려웠던 유라시아 대륙이 거대한 용틀임을 시작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 축인 동북아는 세계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심에 중국이 자리하고 있다.

동북아는 세계물동량의 30%를 처리하고 있으며, 가장 빠른 물동량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동북아 역내 국가들과의 수출입 교역은 전체의 40%에 육박하며, 특히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은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의 26.1%에 달했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미국(11.1%), EU(8.7%), 그리고 일본(6.2%)에 수출하는 물량보다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의 발전을 토대로 시베리아 극동,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계하는 유라시아 교통․물류 및 에너지 협력이 빠르게 확산됨으로써 신(新) 실크로드시대의 개막을 목전에 두고 있다.

중국은 고속철도망으로 전국을 연결하고 이를 중심으로 철도를 통해 유럽 및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진출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이미 유라시아로 가는 다양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7월에는 총 연장 1만km의 허난성 정저우-독일 함부르크 간 국제화물열차가 시범운영을 시작했으며, 11월에는 총 연장 2만km의 중국 시안-러시아 모스크바 간 국제화물열차가 개통되었다.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유라시아 고속철, 중앙아시아 고속철, 그리고 범아시아 고속철의 건설을 위해 30여개 국과 협의 중에 있다. 2016년이면 북중 접경지역까지 중국의 고속철도가 연결된다. 부산에서 베이징까지 고속철로 1일 생활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집권 3기 푸틴 대통령의 대외정책 핵심 중 하나는 신동방정책으로 그 중심에 숙원인 극동 시베리아 개발이 있다.

신동방정책의 추진은 동아시아 지역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푸틴의 국정철학인 ‘강한 러시아’의 구현을 위해 이 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필요성에 기인한다.

‘강한 러시아’의 재현을 위해 낙후된 동시베리아 및 극동 지역 개발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 동북아 및 아태 지역을 철도와 에너지망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2014년 중국과 러시아는 4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동부가스노선 건설 및 공급 협상을 타결했으며, 더 큰 서부가스노선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체제 전환을 통한 산업화에 실패한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 수출 비중은 70%에 달하며, 재정의 절반을 이로부터 충당한다. 국제유가 하락은 이 같은 경제구조에 치명적인 타격이며, 따라서 새로운 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신동방 정책은 러시아의 미래가 걸린 사활적 프로젝트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방의 수도로 격상시켜 아태 지역 국가와의 협력을 위한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남북의 통로’를 뚫어야 유라시아에의 길이 보인다

유라시아 시대의 도래는 한국 국가발전의 새로운 기회이며, 한국은 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대륙과 대양을 연계하는 허브이다. 유라시아 시대의 중심에 철도가 있으며, 철도는 다른 물류체계와 달리 출발점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철도는 점과 점을 연결하는 항공 및 해운과 달리 선의 연결이며,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로 연계하는 문물과 문명의 교류를 통해 면으로 발전이 가능하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을 바탕으로 아시아 각국의 연계가 긴밀화하고 있으며, 유라시아 전역에서 철도를 중심으로 파이프라인, 고속도로, 그리고 전력망을 연계하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한반도는 분단으로 인한 단절로 대륙국가의 정체성이 사장되어 왔으며, 오랫동안 인위적인 섬으로 존재해왔다. 이제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문명권을 연결하는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는 지난 5000년과 달리 한반도가 이제 대륙의 주변부가 아니라 대륙과 대양의 문물이 교류하는 허브로서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는 남북한을 넘어 대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허브이자 대 통로이다.

유라시아로 가는 길에 북한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라시아 시대의 한반도가 지니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동북3성 개발의 성공을 위해서는 한반도를 통해 동해로 나가는 물류체계가 필요하다. 중국이 오래전부터 북한의 도로와 항만, 철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북한에 장기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2012년 러시아는 북한의 구 소련시기에 발생한 채무(110억불)의 90%를 탕감했으며, 잔여액도 양국 간 합작 프로젝트로 북한지역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나진-하산 철도 항만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이며, 북한 철도의 개보수 및 송전망 등 극동 시베리아 개발과 연계된 경협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유라시아 시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노력을 선행시켜야만 한다. 한반도의 통로,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통로를 뚫어야만 한다.

철도 연결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며, 다양한 긍정적 파생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철도를 통해 석유와 가스 파이프, 송전탑 공사 등의 동반 건설이 저비용으로 가능하다.

분단체제의 해소는 한국을 세계 선도국가로 인도하고 남북경제공동체의 완성으로 대동강의 기적과 한국경제의 제 2 도약을 가능케 할 것이다.

중국 동북3성 개발과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개발, 북한재건 및 남북한의 협력이 전제될 경우, 동북아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되고, 한반도는 그 중심이 될 것이다.

통일비용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힘으로 경제를 재건하고 발전시킬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남한지역의 자본과 기술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인 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지난 100년이 해양세력 영향권이었다면, 새로운 100년은 대륙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새로운 시대가 될 것이다.

아울러 한반도가 대륙과 대양을 연결하는 허브로서의 위상을 확립함으로써 한반도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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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분단 70년의 과제

현 정부가 지지율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도 새삼스레 통일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문제는 통일이 구호와 담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을 경과하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선제행동(first mover)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위기에 처한 북한에게 신뢰형성을 위한 선제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인내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가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하며, 신뢰형성을 선도해야 한다.

한반도 통로의 개설은 바로 사실상의 통일을 의미한다.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의 득실을 떠나 남북한의 상생과 공영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시대의 도래는 남북한에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남북한이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는 허브로서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우리 민족은 물론 주변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분단체제의 지속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시대의 개막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와 새로운 국가발전의 동력을 얻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가 유라시아 시대라는 세계사적 발전으로부터 뒤처지게 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세계생태평화공원으로 분단의 상징인 DMZ에 생태와 평화의 통로를 열고, 남북한의 철도를 연결하는 사업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보다 크고 멀리 보는 눈으로 남북관계의 의미를 새기고 적극적이고도 과감한 남북협력을 추진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준비다.

About 김종영™ (937 Articles)
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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