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급 경제학자와 ‘A+ 경제학’
잡놈들 전성시대 – 결대로, 흐름대로, 즐겁게!
C급 경제학자 우석훈의 ‘경계도 장르도 없는’ 경제학
잡놈들 전성시대
우석훈 지음
새로운현재 펴냄
2015년 3월
역시 자고로, 책은 제목이 반이다.
최근 읽은 책 중 이렇게 제목이 와 닿아, 가슴을 때린 것이 있었더냐.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찌질하게 울 수도 없게 만드는, 정말 절묘하고도 가슴 아픈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그야말로 가짜들이 판치고 설치고 나대는 ‘잡놈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
‘경제학’과는 베를린 장벽 정도의 담을 쌓고 사는 녀석이라, 경제학자들의 심오한 이야기들이 솔직히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석훈은 정말 좋아라 하는 경제학자이자 저자이자 운동가이자, 음, 이제는 부원장이다.
저자는 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 말한다.
이른 바 A급 경제학자라 자타가 공인하는 이들의 행태나 주장 등을 지금껏 살펴보았을 때, 과연 저자가 C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꾸준히, 근면하게 시민들을 위한 경제학 강의를 해왔다는 점에서 그는 아주 괜찮은 C급 학자이다.
활발한 저술활동과 기타 등등의 대외적 활동(!)으로 이미 우석훈이란 이름은, 이른 바 있는 이들이 아닌 넉넉지 못한 이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일단 그것으로 그는 ‘싸가지’ 충만한 학자, 활동가가 되시겠다.
책은 정치 에세이다.
박근혜 시대의 정치 에세이. 당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포스트모더니즘 어쩌구 하던 시대를 단숨에 고대, 봉건시대로 돌려버린 이 살벌한 파격 앞에서, 정치라는 것을 근원적으로 어떻게 봐야 하는지부터 당최 감이 안 오는데, 저자는 발랄하게, 또한 비장하게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재미가 없으면 의무감으로 책을 읽게 되고, 급기야는 저자가 야속해지는 경우가 있다. 나의 선택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석훈의 책을 읽으며, 그가 미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키득거리며, ‘이 냥반 아주 아주 재미지네!’를 연발하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적어도 싸가지는 있는 이들을 애타게 그리워하곤 했는데, 그런 면에서는 충분히 A급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미 우리는 분노가 기본 옵션인 시대에 살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나로 하여금 분노 게이지를 높이게 만든다. 왜 아니겠나. 속절없이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어머니, 아버지들이 아직도 차가운 땅바닥에 뒹굴며 진실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
이를 무참히 짓밟는 공권력이 진돗개만도 못한 이들에게 통제를 받고 있는 코미디 속에서 어찌 분노가 평준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분노의 힘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소진시킨다.
한 마디로 화내는 당사자도 지치고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복수의 정치학을 펼치고 있는 현 정부에 우리도 분노의 힘으로 맞받아친다는 것은, 결국 도찐개찐 하자는 건데, 그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우리, 아무리 그래도 잡놈들보다야 우월한 존재 아닌가.
그래서 공감했다. ‘결대로, 흐름대로, 즐겁게’라는 저자의 철학에, 거창하게 철학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뒤틀린 이 시대를 어쩔 수 없이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의 처절한 생존법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아는데, 치사량에 육박하는 스트레스 유발정권 앞에서,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저자는 평생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에 뺑이를 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연구원 부원장이라는 아무 권력도 없는 자리에 앉아, 다음 전쟁의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다면, 그 담에는 전리품을 서로 먹겠다고 난리 난리칠 다음 이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다시 애보기 투쟁에 나설 생각이란다.
난 저자가 미친 척 정치판에 뛰어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암튼 그의 지금 생각에도 존중을 표하고 싶다. 나에게 그는 앞으로도 재미진 책들을 많이 펴냈으면 하는 ‘즐겨찾기’ 저자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하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다 끝났다고 하면 끝난 것이고, 아직 반전의 기회가 충분하다고 느끼면? 그럼 충분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리 복잡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물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더럽게 복잡한 메커니즘에 따라 정의가 땅바닥에 쳐 박히기도 한다. 그 정도는 무지하게 무지한 나도 안다.
저자에게 공감한다.
잡놈들이 전성시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그것을 제 때에 막지 못한 ‘잡놈이 아닌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 대한민국 구성원들을 힘겹게 만든 책임 역시 이 잡놈들과 함께 우리도 크게 느껴야 한다.
그렇기에 패배 앞에 주눅 들고 싶지만, 다시 총반격에 나서야 한다. 이겨봐야 한다. 그래야 많은 이들이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불행에서 빠져나올 조금의 가능성이 생기니까.
새정치민주연합, 여전히 답이 안 나오는 정당이다.
맞다. 지들끼리 치고 박고, 지들끼리 동아리 만들어 편싸움한다. 정권 탈환을 위한 공부도 더럽게 안 한다. 민생을 모르고 민심에 둔감한 것은 새누리당과 도찐개찐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달라는 것은 또 더럽게 많다. 선거에 패하면 국민들이 우매한 것이고, 이기면 지들이 잘난 것이다. 싸가지 없기도 도찐개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육아의 숭고한 임무와 즐거움을 포기한 채, 여의도로 출근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지금은 힘들지만,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이라도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무엇보다 위대한 명분이다. 이런 명분 앞에 누가 감히 토를 달 수 있는가. 아니, 내 새끼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데!
인사가 만사다.
사람 하나 잘못 뽑으면 세상이 어떻게 막장 드라마로 전락하는지, 지금 도대체 몇 년째 보고 있는가. 삶이 팍팍해지는 것이 오감이 아닌 육감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굳이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아직 3년이 남았다.
절망스럽지만, 반대로 그 만큼 준비할 시간도 있다는 소리다. 충분히 준비하고 공부하고 절치부심에 와신상담하여! 잡놈들의 전성시대를 마감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상식과 기본과 정의가 짱 박아 둔 컨테이너 속에, 차가운 바다 속에서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때문에 난 저자의 생각과 행동에 동의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나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지향점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온전히 제1야당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저자의 마지막 제안처럼 정당에 가입하진 못하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존재감 미미한 다른 당의 당원이다. 그렇지만 응원은 하겠다.
얼마 전 딸아이의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우리 나이로는 세 살이다. 케이크에 꽂힌 초를 꺼보겠다고 바둥거리는 녀석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태어난 나는, 상식 중흥의 개인적 취향을 안고 살아가겠다고. 그게 더 재미있고 중요하니까.
이달 말에 보궐선거가 있다. 재미있게 후회 없이 다들 정의롭게 싸우고 승리하길 바란다. 잡놈들 말고. 파이팅이다!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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