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지 않는 예술은 썩는다”
김기반 작가가 50년 가까이 걸어온 예술과 예술가의 삶은 ‘늘 새로운 변화를 찾다’는 한 마디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다. 미술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 다양한 변화를 살펴보면 ‘인간 개인의 번뇌’와 ‘인간의 이상과 사회 현상의 괴리와 모순에 대한 성찰’과 ‘자연 현상과 신과의 갈등에서 오는 불안과 환희’를 표현한 작업들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되어 흐르는 모습을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기반 작가
“흐르지 않는 예술은 썩는다”
• “예술은 진실 추구하는 산물, 예술가는 교량 역할 해야”
• ‘繪彫寫實·變異刑象性’ 등 ‘새로운 창작 기법’으로 관심
• ‘나뭇잎·물고기·새’ 등 작품 속에 ‘실제 자연’ 담아 표현
사람과사회 2018년 여름·가을 통권6·7호
예술(Art)과 예술가(Artist). 얼굴과 작품을 살펴보면서 두 낱말은 김기반(68) 작가에게 참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47년 그림 인생’을 살아온 예술가다. 그런 만큼 삶에 예술과 예술가의 진한 내음이 깊이 묻어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60대 후반이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5060’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고 잘 어울릴 정도다.
김 작가는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충남 서천에서 농부 겸 목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해 담장 벽돌에 새겨진 무늬 찾기에 시간 가는 줄 몰라 지각을 번번이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독서 포스터 과제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미술 교사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을 책상보다 더 크게 그렸다는 이유에서다.
‘47년 그림 인생’ 예술가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부친께서 완강하게 반대해 공주교육대학에 입학했다. 미술을 포기할 수 없어 조영동 교수에게 회화를, 황교영 교수에게 조소를 배웠고, 재학 시절 전국대학미전에 출품한 「번뇌-회상의 아침」이 우수상을 받았다.
또한 신학에 뜻을 두고 신학대학에 편입했으나 ‘나는 예술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신학자는 될 수 없다’는 자화상을 남기고 중도에 그만 뒀다. 2000년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이창림, 이성도 교수에게 조소를 배우고, 박주영 교수에게 한국화 지도를 받아 「현대미술 감상을 통한 아동화 지도 방안」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81~1982년 충청남도 도전에 「번뇌」를 출품해 입선했으나, 그 후 심사 운영에 불만을 품고 불참했다. 2006년 심사위원으로 되었을 때에는 ‘심사판정점멸기’를 제작해 심사에 공정성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작가는 한국미술협회, 국제미술협회, 대한민국아카대미미술협회 이사, 아시아미술대전 운영위원을 지냈다. 화연회(대전 원로작가 모임), 대전현대미술협회 회장과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이 기간(2003∼2004년) 동안에는 ‘현대미술 청년작가 조망전과 위상전’을 추진했고, 올해는 예술혼이 담겨 있고 창의적인 작품세계와 열정을 가진 작가를 초대하여 발표함으로써 대전 지역 현대미술 문화 발전을 기여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찾다
김 작가가 50년 가까이 걸어온 예술과 예술가의 삶은 ‘늘 새로운 변화를 찾다’는 한 마디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다. 미술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 다양한 변화를 살펴보면 ‘인간 개인의 번뇌’와 ‘인간의 이상과 사회 현상의 괴리와 모순에 대한 성찰’과 ‘자연 현상과 신과의 갈등에서 오는 불안과 환희’를 표현한 작업들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되어 흐르는 모습을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 작가의 작품 세계는 변화무쌍하다. 작품의 변화를 크게 보면 세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종교와 내면을 중심으로 한 시기, 둘째는 의식의 변화에 오는 설치와 조형 세계, 셋째는 사람과 본연의 모습을 다루는 변화다. 그 다양한 변화는 조금 더 자세히 나누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기는 70년대 최초의 작업으로 번뇌, 회상, 군중, 행렬 등 인간 내면의식을 표현하던 때다. 2기는 십자가, 천지창조, 저 끝 등을 비롯한 신의 존재와 의구성에 대한 탐구 과정을 담은 때다. 3기는 혼돈과 갈등의 시기인 ‘바다의 넋’의 표현 과정이다. 4기는 평면을 떠난 조각의 시기인데, 알루미늄 호일과 컴퓨터 칩을 응용한 작업이 중심이다. 5기는 소조와 목조 작업으로 진행한 입체 표현의 시기다. 6기는 ‘변이형상성(變異刑象性)’ 접근법을 적용한 진리와 인식 변화에 따른 설치 미술 작업의 시기다. 7기는 환경 보존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한 다양한 방법으로 창작을 하던 때다. 8기는 화석을 응용한 ‘부활’ 작업, 9기는 평범한 인간이면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도시사원’을 주제로 한 작업, 10기는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생성과 소멸’ 작업이다. 11기는 인도 여행 중 ‘갠지스강의 인상’을 표현한 주제 ‘산화’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탐구 과정과 ‘생성의 소용돌이’ 주제를 병행하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8년 6월 19일, 대전 대덕구 중리동에 있는 김기반 작가 집에서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변화를 담은 작품 세계 설명 자료를 살펴보고 나니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회화를 비롯해 오랜 작품 활동을 통해 나타나는 표현 방법이나 의식을 간추리면 어떻게 볼 수 있나?
번뇌(煩惱), 회상(回想), 군중(群衆), 바다의 넋, 행렬(行列), 천지창조(天地創造), 저 끝, 컴퓨터 칩 작업, 설치와 목조 작업, 흙, 환경 프로젝트, 도시사원(都市寺院), 소멸(消滅)과 생성(生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변화와 인식은 나의 삶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그림은 일기며 생활 그 자체다.
회화·부조·사진·실물의 결합 ‘繪彫寫實’
▲유럽에서 여러 작품을 보고 느낀 게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된 계기로 알고 있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기에 새로운 것을 찾게 됐나?
회화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는 ‘진리에 대한 의구심과 갈등’을 느낄 때다. 그럴 즈음 유럽으로 연수를 갔다. 영국 대영박물관, 이탈리아 시스티나대성당,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을 살펴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사실적 기법은 르네상스에 끝났다는 생각이 들고, 페인팅 기법의 끝판이라고 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까지 간 현실에서 그 들의 벽을 넘어 설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이 밀려와 돌아오는 내내 우울했다.
그래도 하나의 희망은 현대미술을 추구한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때도 알루미늄 호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을 시기였다. 현대미술은 새로운 미디어와 아이디어 싸움이라는 것을 전제로 회화는 물론 생활 주변의 오브제를 활용한 평면, 입체, 설치 작업을 비롯해 실험적 작품을 꾸준히 진행했다. 이 같은 작품 창작 노력을 인정해 2000년에는 대전미술협회로부터 창작상을 받기도 했다.
▲새로운 창작을 위한 여러 도전 중 회조사실(繪彫寫實)이란 게 있는데, 이 용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2004년에 창안한 기법이 ‘회조사실(繪彫寫實, PRPO)’이다. 회조사실은 회화(繪畵, Paintings), 부조(浮彫, Relief), 사진(寫眞, Picture), 실물(實物, Object)을 사용해 한 화면에 제작하고 나타낸다는 뜻인데, 네 낱말을 섞어 새로 만든 용어다.
이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2008년 국제현대미술협회 초청을 받아 뉴델리에서 초대전을 열어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인 2008년,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교편도 중단했다. 이후 화랑미술제, 우연갤러리 정수작가 초대전, K-아트 프로젝트전, 한가람미술관(예술의전당) 등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또 프랑스, 독일 에센(Essen)에서 열린 현대미술(Contemporary Art), 뉴욕에서 열린 어포터블 아트페어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진리에 대한 고민에서 태어난 變異刑象性
▲창작 발표 자료집 『변이형상성』을 보니 변이형상성(變異刑象性)이라는 낱말이 나오는데 어떤 것인가?
작가의 작품이 변화한다는 것은 작가의 의식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평면만 하던 작가가 입체를 하기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우려의 말을 한다. 외도를 한다는 말인데, 작가에게 작품의 변화는 외도도, 전환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작가의 의식 표출이고 작가의 목소리다. 작가의 표현 행위는 평면이든, 입체든, 행위든, 언어든 상관이 없다. 작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동원할 필요가 있다.
변이형상성(變異刑象性)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진리는 영원불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작은 고민에서 출발했지만 깊은 늪으로 빠진 사건이었다. 그동안 의지했던 사상, 철학, 정체성이 송두리째 변화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불변과 불멸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은 진리라는 텃밭에 무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의심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다. 이는 너무 큰 사건이었다.
▲진리에 대한 의문이 변이형상성의 배경과 시작인 셈인데, 이름을 ‘변이형상성’이라고 한 이유는?
세상은 움직인다. 유동의 법칙에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변이형상성’이라고 지었다. 형상을 지은 것은 변화 안에서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 순간을 영원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진리도 머문 순간을 진실이다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리는 어떤 형상으로 성격을 규정할 게 아니다. 진리가 진실의 실체라고 볼 때 그렇다.
조형성에서 진리라는 것은 현상에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라 시각적 고정에서 출발한다. 현상은 변화의 과정이고, 형상을 형체로 정의할 때 그렇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허구성의 실체에 ‘변이형상성’이라 붙였다.
인간의 욕심과 자연의 희생
▲새, 물고기 등 자연에 있는 존재를 작품에 넣는 계기가 있었나?
새나 물고기는 자연이다. 즉, 의미를 갖고 있는 실존적 존재다. 그리고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죽은 생명체를 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고 문득 물고기 자체의 기원을 더듬어 찾게 되고 그 죽음을 새로운 재생과 나의 예술적 의도를 부여해 갔다.
2004년 3월 7일 일요일, 고향 금강하구언 강물에 떠밀린 쓰레기 속에서 오브제를 수집하는 동안 둑으로 막혀 강물이 썩어 들어가고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환경오염으로 철새가 죽은 사체, 특히 철새를 잡기 위해 갈대숲에 철망으로 만든 새 덫을 놓은 장면을 목격 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새 덫과 죽을 사체들을 수집해 관광객이 보는 앞에서 설치 작업을 진행해 환경오염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환경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며, 그 오브제를 가지고 와 보관 방법을 연구하던 중 생명을 다시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새의 전체적인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박제해 화면에 나열했다. 그러다가 이후부터는 차츰 날개나 부리 등 일부 형태를 제거하고 거기에 이질적인 오브제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부리에 가위를 접목하고 포크와 페인트 붓 등에 날개를 달아주는 등 생각을 확대하고 전환해서 예술적 의도를 가미했다. 이 시기가 ‘회조사실 기법’의 초기 단계다.
▲작품 중 ‘도시사원(都市寺院)’이라는 주제도 눈길을 끈다. ‘도시’와 ‘사원’을 묶은 이유는 무엇인가?
입체 작업에서 다시 평면 작업으로 돌아가는 때다. 이 시기에는 캔버스에 유성 대신 한지에 먹물을 사용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수행자라는 생각이 들어 작품 주제에 표현하기 적절한 재료를 찾다보니 한지와 먹물이 ‘도시사원’이라는 명제를 표현 하는데 적합할 것 같아 선택했다.
도시와 사원이라는 낱말을 사용한 것은 인간이 곧 수행자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쓴 글을 보면 ‘교회에서 기도하고 절간에서 불공드리는 승려만이 수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세상을 인내하며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수행자다’는 말이 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험난한 이 세상을 헤쳐 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도시사원 안에는 젊은 시절 표현했던 ‘행렬’ 시리즈도 먹물이라는 물성을 통해 녹아 있다.
“인간이 곧 수행자다”
▲도시와 사원, 수행자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이 고난자이기에 이를 이기는 모든 사람이 곧 수행자”라는 말씀을 들으니, 고통이나 현실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문제는 중요하다. 또한 이 문제는 작가와 작품에게 모두 중요하다. 그래서 ‘인간의 실체는 무엇이며, 예술행위는 왜 이루어지는가?’라는 물음은 중요하다. 예술 행위는 지고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술 행위는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도려내는 칼(메스)과 같은 수술 도구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 행위가 단순한 표현 그 자체로 끝나면 안 된다. 오히려 그 행위가 영혼과의 교감으로 높아져야 하고 작가는 작품에서 그와 같은 격상을 늘 쉬지 않고 희구해야 한다.
▲나뭇잎을 사용한 작품은 무척 인상적이다. 낙엽은 자연 상태와 달리 작품에서는 실제와 다른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존재로 나타난다.
회화 같지만 회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앞에서 이야기한 ‘회조사실’을 사용해 입체와 평면을 결합해 회화성과 사실성이라는 양쪽 특성을 모두 드러낸 것이다. 회화 기법을 넘나드는 것, 이것은 삶에서 이상과 현실이 이질적으로 다가들며 함께 존재한다는 뜻도 된다. 삶과 예술은 바탕이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앞에서 ‘나의 그림은 일기며 생활 그 자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바탕은 자연, 생명, 어머니 등 근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 예술혼은 생활에서 나온다”
▲신학을 배우기도 했고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며 새로운 기법을 만드는 등 남다른 예술을 추구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혼은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나?
선조 대에서 호(號)를 대면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명필가와 부친의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년 시절 등굣길에 큰 기와집 담장을 지나가게 되는데, 어린 마음으로 까마득한 높이에 긴 담장으로 기억된다. 그 담장 때문에 늘 지각을 해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곤 했었다. 담장 벽돌장에는 신기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무늬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벽돌이 제련소 용광로 용해물로 만든 벽돌이었다. 사각틀 안에 광석 용해물을 부으면 공기와 만나 식으면서 회오리치는 선과 기포가 신기한 무늬를 만들었던 것이다. 내 작품에는 꿈틀거리는 곡선이 많이 등장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 시절 그 선들이 머릿속에 각인돼 있어서 작업할 때마다 표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릴 때 경험이 이랬듯이 ‘나의 예술은 생활 속에 있고 생활 속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정신적 신앙으로까지 의식화됐고, 그 일들을 일기를 쓰듯 작업한다. 이 예술 행위와 작품 표현 의식의 구조를 보면,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인식, 그리고 그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오는 갈등과 깨달음, 인간과 신과 자연의 질서와 변화 과정의 통찰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정신적 세계를 표출하기 위한 탐구 과정이다.
“예술과 예술가는 진리 추구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물음이 ‘예술은 무엇인가’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의 탄생을 제련소에 비유한다면, 용광로에서 끓고 있는 광석의 용해물질을 예술행위로 볼 수 있다. 예술 행위는 고정돼 있지 않고 유동적이고 역동적이다. 들끓고 몸부림치고 고민하는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이렇게 볼 때 제련 기술자는 예술가다. 기술자가 용광로에 광석을 넣고 녹여 내는 자체를 예술행위로 볼 수 있다. 또 녹인 광석이 분리되어 새로운 것이 탄생하거나 만든 것이 예술 작품이라 생각한다.
예술 행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역동적이다. 또 변화와 진화의 과정을 겪으며 발전을 가져오는 게 예술이다. 이러한 것은 작가 자신의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가능한 것이다. 나에게 예술은 진실을 추구하는 산물이다. 예술가는 진실을 파헤쳐 분리하거나 통합해 본연을 찾아주고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고 회복하게 하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예술은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했는데 예술가의 역할을 덧붙여 설명한다면 어떤 것인가?
예술에서 말하는 진실은 근본을 뜻한다. 원초적 성질인 본성을 말한다. 그 본성을 찾아주는 일이 예술가의 사명이다. 진실을 찾아야 할 대상은 우주에 있는 삼라만상이 모두 해당한다. 예술가는 진실을 찾는 구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예술가는 스스로 진실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가 융화되어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할 때 진실을 찾을 수 있다.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왜곡된 허상을 정상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데, 예술가는 용기를 갖고 외부 자극으로 비뚤어진 본질을 원래대로 바르게 잡아주고 찾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흐르지 않는 예술은 썩는다”
▲예술과 예술가는 형편이 어렵다. 예술가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예술가가 창작에 임할 때 늘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매너리즘(Mannerism, 惰性)’과 ‘나르시시즘(Narcissism, 自己愛)’에 빠지는 일이다. 이 두 가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중독 환자가 돼 안주에 빠진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안주에 익숙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 난다.
어찌 보면 대부분의 예술가는 안주와 매너리즘에 심취해 작업을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달콤함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또 달콤하고 거대한 힘을 밀어내고 보이지 않는 성에서 빠져나오려는 의지가 필요하며, 이런 노력을 하기 위해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예술 행위는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며, 흐르기를 멈추고 정체돼 있다면 썩기 마련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렇게 토로했다. ‘기존에 자명하다는 것,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완전이라는 틀을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하고 개선해야 하며, 철학은 이를 깨부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어디 그게 철학뿐이겠는가, 창작이 최우선인 예술에서는 더욱 귀담아야 할 말이다. 진화론자 다원의 말도 떠오른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힘이 센 것도 아니고, 덩치가 큰 것도 아니며, 머리가 좋은 것 또한 아니다. 오로지 변화를 찾는 것만이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라고
김기반
김기반 작가는 1950년 6.25전쟁 중 충남 서천 금강변 작은 마을에서 농부 겸 목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모 미술대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부친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공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는다. 한 때 신학에 뜻을 두고 한성신학교(현 한민학교)에 편입했으나 신은 ‘학문이 아니라 믿음뿐이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날 밤 밤새워 자화상을 그리고 그 밑에 ‘넌 진정 신학자는 될 수 없다, 예술가는 될 지언정!’이라는 문구를 써넣고 그 날로 중퇴를 하고 신과의 이별을 선언한다. 그 후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1971년부터 교직에 몸을 담은 후 36년 동안 초등학교에 근무하며 한남대학교 조형예술학부에 출강하다가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명퇴했다. 교직 첫해 충남 대천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대전, 서울, 한가람미술관(예술의전당), 인도, 중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15회의 개인전을 진행했다. 또한 터키, 이탈리아, 러시아, 몽골,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국내외에서 개최한 단체전과 초대전에 370여 회 참여했다. 현대미술교류회 위원장, 그릴회 회장, 한국전업작가협회 대전·세종지회 이사 및 서양화 분과위원장, 한국미술교육학회 이사, 대전현대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대전지회이사, 건축조형물 심의위원, 현대미술청년작가위상전 추진위원장, 2017 국제판화레지던시 입주 작가,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조형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대전광역시미술대전, 아시아미술대전,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등 여러 미술대전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2014 대한민국 선정 작가상 수상(미술과비평), 전국대학미전 우수상, 신미술대전신미술상, 국제현대미술협회 IMAA상, 아시아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대전 초대작가상, 한국미술협회대전지부 창작상, 문화체육부장관상, 녹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 심향회 회원, 그릴회 회원, 화연회 원로작가 회원, 아시아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협회 이사, 대전국제미술교류회 회원, 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이사, 대전국제아트쇼 운영위원, 대전현대미술협회 회장 겸 운영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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