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북경제협력 기업가 최원호다”
‘평양’에 치킨 전문점 열고 가지 못하는 딱한 사연…누구를 위하여 남북 관계는 겨울만 붙잡고 있는가!
최원호 맛대로촌닭 대표
“나는 남북경제협력 기업가 최원호다”
누구를 위하여 남북 관계는 겨울만 붙잡고 있는가!
‘평양’에 치킨 전문점 열고 가지 못하는 딱한 사연
자산실태조사 결과 ‘확인 금액 0원, 지원 금액 0원’
최원호 맛대로촌닭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남북경제협력 기업가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이 발행하는 『민족화해』 97호(2019년 3·4월호) 지면 중 ‘통일을 일구는 사람들’에 있는 최원호 대표 인터뷰를 게재한다. 최 대표는 2007년 평양 한복판에 치킨 전문점을 낸 사업가다. 하지만 문을 열고도 갈 수 없다. 5.24조치 때문이다. 남북 관계가 나빠지면서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아직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최 대표는 어떻게 평양에 치킨 전문점을 냈고,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사람과사회™ thepeopleciety@gmail.com
사진 김성헌 객원작가
정리 염규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홍보팀 부국장
사람과사회™ 제3권 제1호 통권 제8·9호
어느 새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평양의 번화가 북새거리 한복판에 120평 규모의 치킨 전문점을 낸 것이 2007년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게 문을 연 다음에는 가보지 못했다. 식당 운영에 필요한 식자재를 인천항을 통해 올려 보낸 뒤 우리 정부의 5·24조치가 발표되었다. 가게의 오픈 준비를 모두 끝냈는데, 정작 주인은 가게를 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억울한 것이 있었다.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사업이 멈추었는데, 정부는 나 몰라라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은 놀랍게도 현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가 지난 해 9월 맛대로촌닭 최원호 대표에게 보낸 한 장짜리 서류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금강산관광 중단 및 5·24 조치에 따른 남북경협·교역·금강산기업 지원과 관련하여 귀 사의 투자·유동자산 실태조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알려드립니다. 확인 금액 0원, 지원 금액 0원”
어느 누가 다시 경협에 나설 수 있을까
“앞으로 남북경협이 다시 잘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현 정부 들어와서도 경협으로 피해를 본 기업인들에 대한 보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부가 보장하고 추천해서 남북경협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전 재산을 털어 평양에 치킨전문점을 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이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원 한 푼 보상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남북경협에 대한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선뜻 다시 나설 수 있겠어요? 지난 12년 동안 새까맣게 타버린 제 마음을 과연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해왔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질문하기 죄송했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맛대로촌닭을 찾아 방금 치킨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최원호 대표와 마주 앉자마자, 그는 현 정부에 대한 서운함을 쏟아냈다. 아직 치맥을 즐기기엔 이른 시간, 그는 분주히 배달을 다녀왔고, 부인은 언제나 그랬듯 홀 서빙을 하며 치킨을 튀겼다.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갈 때에도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일하는 최 대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통일부는 과거 경협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주겠다며 피해보상 신청 접수를 받았다. 하지만 심의평가위원단과의 면담이나 소명의 기회 한 번 주지 않고, ‘피해 보상 불가’라는 종이 한 장만 날아왔다. 왜 자신이 피해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는지 이유조차 몰랐다. 아무리 매일 통일부에 연락을 하고 하소연을 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평양 치킨전문점을 오픈하기 위해 들었던 비용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제시했음에도 보상금 ‘0원’이란 답변을 받았을 때, 그것도 한 마디 설명조차 없이 서류 한 장으로 통보받았을 때, 최원호 대표가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느꼈을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계 최초, 평양 1호 치킨 프랜차이즈 ‘락원식당’
최원호 대표는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의 ‘프로’였다. 10년 넘게 치킨 전문점을 운영하며 건물까지 샀을 정도로 수완이 좋았다. 정성을 가득 담은 맛대로촌닭은 입소문을 타고 많은 이들이 찾는 ‘치킨집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2004년 닭고기 수입 사업을 하며 북측에서 사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미국, 중국, 태국, 브라질 등에서 10만 톤 이상의 닭을 수입하던 때였다. 어느 순간 해외에 돈이 나가는 게 아까웠다. 차라리 그 돈으로 북에서 닭을 길러 수입하면 북에도 좋고 경비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렴한 인건비와 가까운 거리로 인한 물류비 절감도 매력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조류독감으로 인해 어렵게 되었다. 그 후 2005년 직접 북에 치킨집을 열자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북측 국영목장관리국(가금총국) 소속 무역회사를 통해 가게 터를 알아봤고,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락원무역총 회사와 인연이 닿아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문동, 흔히 북새거리라 불리는 곳에 가게 자리를 정하고 계약을 했다. 15년 영업권 보장에 이익금을 북측과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70%를 최 대표가 30%를 북측이 갖는 조건이었다. 락원무역이 건물을 제공하고 최 대표가 설비를 갖춰 운영하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계약 후 6개월 동안 개업 준비를 했다. 매장에서 치킨과 생맥주를 팔고, 배달도 하는 시스템이었다. 식당의 공사비로만 3억 5,000만 원이 들었다. ‘닭고기 전문 식당’이라는 간판도 멋지게 달고, 각종 자재를 중국을 통해 들여와 예쁘게 단장했다. 그 과정에서 최 대표는 남북의 문화적 이질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통일이구나. 만나서 다름을 확인하고 같음 역시 있음을 느끼는 것이 통일의 과정이구나’ 느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던 북측 관계자들도 차츰 마음 을 열고 진솔하게 대해주었다.
최원호 대표는 남측의 운영 방식을 그대로 북에 적용했다. 홍보용 전단지도 만들고, 쿠폰을 10매 모으면 한 마리를 무료로 서비스해주는 것까지 똑같이 했다. 다만 단어는 북측을 따랐다. 치킨은 ‘닭’으로, 프라이드는 ‘튀기’로 바꿨다. 남측에서 재중동포 조리사를 뽑아 3개월 간 교육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열흘씩 두 번 북측을 방문해 북측 조리사들을 가르쳤다.
이 모든 일들이 분단 이후 최초,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당시 많은 언론도 최원호 대표의 평양 치킨 프랜차이즈를 크게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외신들도 이 신기한 남북합작사업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피와 땀이 서린 평양 락원 닭고기 전문식당을 10년이 넘도록 가보지 못했다.
어떤 미사여구보다 진정성 담긴 행동이 더 중요하다
최원호 대표와 인터뷰한 시기는 마침 통일부 50주년을 자축하는 행사가 열린 즈음이었다. 최 대표는 과연 통일부가 스스로 50주년을 축하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가게 문을 열고 치킨 배달을 해야 하는 최 대표는 제대로 항의 방문 한 번 하기 어렵다.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매일 통일부 페이스북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뿐이다. 전화를 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통일부는 무시한다. 자신의 전 재산을 잃었다는 것보다 더 억울하고 서러운 것은 국가가 국민인 자신을 마치 ‘없는 존재’처럼 여겨왔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최근 북측을 다녀온 재미동포가 SNS에서 락원식당을 다녀온 후기를 소개하며 이렇게 표현한 것을 보았어요. ‘주인 잃은 남측의 치킨 전문점, 평양에서 잘 나갑니다’ 제가 그토록 열심히 준비해서 개장한 식당이 잘 운영되고 있다니 기쁘면서도, 또 한 편으론 너무 속이 상했어요. 저는 여전히 갈 수 없으니까요.”
현 정부 들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도 정부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미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더 이상 진전은 없다. 개성공단기업인들의 설비 점검을 위한 방북 신청은 또 다시 반려되었다. 현 북미 관계와 대북 제재가 변함없는 이유였다. 남북경협이 당장 재개될 수 없고 북미 간 협상이 진전되어야 비로소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 사이,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당장 먹고 살아갈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남북경협에 참여했던 이들이다.
최원호 대표가 지난 12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듣기 힘겨웠다. 건물을 날리고, 집을 날리고, 동생의 집마저 저당 잡히고 끝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최 대표는 끝내 목이 메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학비 문제로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할 때는 끝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지금 자신이 소유했던 건물에 세를 들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차도, 월세로 살아가는 생활도 이미 익숙하다. 하지만 국가가 자신을 버렸다는 그 감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지난 정부 시기 남북경협에 참여했던 이들은 별안간 북의 핵무기 개발에 일조한 ‘범죄자’로 매도되었다. 남북화해와 통일의 일군이라 불리던 이들이 한순간에 ‘친북좌파’가 된 것이다. 최 대표의 말처럼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전 재산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이들은, 단지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잃었기 때문에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것도 큰 고통이지만, 정작 더 큰 고통은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한 순간에 내팽개쳤다는 사실, 자신의 명예를 짓밟았다는 사실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통한 공동 번영을 이야기한다. 철도와 도로 연결을 통한 대륙 진출의 부푼 청사진을 너도나도 제시한다. 어려운 경제를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고, 절망에 빠진 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최원호 대표의 굳은 살 박힌 손과 뜨거운 눈물을 보며 그것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닫는다.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떠들 것은 따로 있다. 최원호 대표가 꿈에도 그리는 자신의 평양 락원식당을 하루 빨리 찾게 되길 기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 대표가 내미는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함께 뜨겁게 울어버렸음 좋겠다. 부디 그날까지 건강하시라.
Leave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