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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 03] 부실한 엘리트, 김문수·이건희·장하준

[김기원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 연재 03] 한국의 부실한 엘리트, 김문수·이건희·장하준

진보파는 실력이 부족합니다. 실력 부족은 이념의 혼란에서 기인하는 바 큽니다. 진보파 중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주사파 이념이나 사회주의 혁명론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거기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무엇을 대안으로 삼아야 할지에 관해 진보파 내에서 정식 토론도 잘 하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북유럽의 복지 모델을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김기원 교수는 1983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4년 12월 7일 오후 10시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향년 61세)했다. 진보학계의 대표적 경제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이후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안식 연수를 하다가 올해 10월 현지에서 간암 판정을 받고 귀국한 뒤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8·15 해방 직후 한국의 경제 상황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인 재벌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왔고, 최근에는 ‘북한’, ‘북한 사회’로 관심을 확대했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등을 통해 현실 참여에도 적극 나섰다. 2013년 9월부터 1년 동안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도 ‘베를린통신’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에 41편을 기고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김 교수는 진보 성향을 분명히 하면서도, 진보 진영이 흔히 비판받는 ‘경직성’과 ‘도그마’를 경계했다. 특히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현실에 기반을 둔 진단과 대안 제시’를 큰 원칙으로 삼아 직접 실천함으로써 후학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진=이수희

한국의 부실한 엘리트 : 김문수·이건희·장하준

사람과사회는 진보경제학계의 대표로 손꼽히는 김기원 교수의 블로그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와 유고집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창작과비평, 2015.12.07)를 참조해 주요 글을 연재한다. 김 교수는 별세 직전 사람과사회 자문위원을 수락한 바 있다. 김 교수의 글 연재는 부인인 이수희 선생과 창작과비평의 동의를 받아 진행하며 정원호 김기원교수추모사업회 회장의 도움도 받았다. 김 교수 글은 6~8회로 나눠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에 게재하는 ‘한국의 부실한 엘리트 : 김문수·이건희·장하준’은 2012년 4월 25일에 쓴 글이다. 원문은 블로그나 유고집을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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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제6·7호 2018 여름·가을 합본호

김기원,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 003

총선이 끝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형태나 문대성 등 허접스런 인물들이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만이 특별하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요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그들보다 영향력이 훨씬 큰 한국의 엘리트 셋을 다루어볼까 합니다.

김문수 지사

며칠 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 자리는 박근혜 의원의 따 놓은 당상인 판에 새누리당 흥행을 위해 출마한 것인지 정말로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연예인 속성도 갖춰야 하니 일정하게 역할은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김 지사는 출마선언 바로 다음날 자기 말을 뒤집었습니다. 대선출마를 위해 지사 자리를 곧 내놓겠다고 하고선 새누리당 경선이 끝날 때까지는 지사직을 유지하겠다고 말 바꾸기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승산이 없는 판에 온 몸으로 던지는 자세도 보이지 않으니 김 지사는 새누리당 경선 해보나마나일 것 같습니다. 흥행 재미마저 식어버렸습니다. 그러니 그의 승리 여부는 접어두고 그의 인물됨을 한번 짚어볼까 합니다.

그는 본인의 대학 선배로서 한때는 운동권 명망가였습니다. 치열하게 투쟁도 벌인 바 있고, 그래서 필자도 푼돈이지만 그에게 보탠 바도 있습니다. 보안사에 붙잡혀 가서 고문당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생각을 바꿀 수는 있고, 특히 과거의 낡은 혁명 사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향하고서 하필 정반대 진영으로 감으로써 많은 이들을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승승장구해 노무현 대통령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경기도 지사에 두 번이나 당선되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인기가 떨어진 데다 그의 부지런함이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그와 가까운 이재오 의원과 마찬가지로 그의 부지런함 하나는 알아줄만 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좋은 일에 부지런한가, 나쁜 일에 부지런한가이겠지만요.) 그래서 그는 마침내 대선 후보라는 자리까지 도달한 셈입니다. 어쨌든 김 지사가 극좌에서 극우로 180도 돌아버리니 그를 보는 사람들도 돌아버릴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본인도 약간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이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별로 지적한 바가 없는 부분을 여기서 언급해볼까 합니다. 우선 첫째는 그의 권력욕입니다. 권력욕은 꼭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말로 권력 의지라고 쓸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그의 고교 동문으로부터 김 지사가 학창 시절에 대통령이 꿈이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김영삼과 같은 식이지요. 그 말을 들을 때는 김 지사에 대한 단순한 험담으로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180도 변절을 보고서는 그 말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는 권력욕에서 출발해 대학에 와서는 비주류로서 혁명적으로 권력을 장악해 보려 하다가 그게 불가능해지니 정반대 방식으로 권력의 정상에 오르려 하는 걸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가치 실현이 목적이고 권력 장악이 수단이라면 그건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김 지사의 변신 과정을 보면 그게 뒤바뀌어서 권력 장악이 목적이고 가치는 거기에 적합한 걸 기회주의적으로 선택해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의 180도 변절의 둘째 원인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입니다. 김 지사가 소신을 너무 쉽게 바꿨다는 말입니다. 대선 후보 출마 선언 후 하루 만에 약속을 뒤집은 것도 바로 이런 가벼움 탓입니다. 그는 얼마 전 춘향전에 대해 ‘변 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이야기’라고 해서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거의 김용민의 막말 수준이었습니다. 김용민은 그래도 19禁 방송에서 한 말이었는데 반해 김 지사는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셋째 원인은 그의 막가파적 스타일입니다. 극좌로 막가파로 달리던 사람은 쉽게 극우로 막가파로 달릴 수 있습니다. 그가 운동권에서 이름을 떨칠 때 교수들의 연구 모임에서 노동 문제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민중을 믿는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 톤이 너무 강해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뭔가를 너무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쉽게 그걸 저버립니다. 그다지 고민 없이 쉽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별로 고민 없이 내던질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민중을 무조건 믿을 수 있을까요. 유신 헌법을 압도적 다수로 지지한 게 우리 민중입니다. 민중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도 문제지만, 민중을 무조건 숭배하는 ‘민중주의’도 문제입니다. 전위로서 무지한 민중을 지도한다는 생각을 버리되, 민중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민중의 긍정적 측면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겠지요. 어쨌든 그는 막가파적 민중주의에서 다시 막가파적 극우파로 변신한 셈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제 식민지 통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고, 촛불집회를 초반에 진압했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차마 하기 힘든 말을 거침없이 쏟아 놓으니 극우파의 선봉장 같았습니다.

행동에서도 그는 논문 사기로 서울대에서 해임당한 황우석과 공동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고, 전임 지사들이 11년에 걸쳐 승인한 골프장 면적의 3배(여의도 8배)에 달하는 32개 골프장을 재임 3년 동안에 무더기로 승인했습니다. 또 같은 경기도에서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을 괴롭히기 위해, 무상급식 정책을 훼방 놓고 경기도에 교육국을 설치해 교육청 영역을 침해하려고까지 했습니다. 다만 김 교육감의 능력과 지지도가 김 지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늦게야 깨닫고 물러서긴 했습니다.

이런 권력욕과 가벼움과 막가파스타일은 물론 김 지사 이외의 다른 정치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그를 비난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전개될 정치 드라마를 이런 시각에서 관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

요 며칠 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삼성 이건희 회장입니다. 그와 이맹희(형) 씨, 이숙희(누나) 씨 사이에 막가파 발언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최대그룹의 회장님이 뱉어내는 말들이 얼마나 추했던지 진보 신문만이 아니라 조선일보도 오늘 사설에서 “삼성 사람들, 국민에 대한 예의를 잃었다”고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 김 지사나 삼성 회장님이나 막상막하입니다.

거의 모든 신문마다 보도하고 있으니 그 발언들을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신문들이 언급하지 않는 다른 측면들을 약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 그렇지 않은 분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분은 지금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아니 이끌어가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룹 회장님도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엔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도 말년에 정신이 오락가락해 회사를 곤경에 빠트렸습니다.

한국의 정주영 회장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판단력이 흐려져 대선 출마라는 커다란 과오를 범했습니다. 특히 10년 전 인생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아침저녁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정몽구 씨를 후계자로 밀었다가 정몽헌 씨를 밀었다가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 대그룹에선 전문 경영인 체제가 발전한 것입니다. 아직 그런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지 못한 한국에선 회장의 고령화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위기에 봉착하기 쉽습니다. 또 경영 능력의 유전자가 존재하지도 않는 데도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 능력의 검증 없이 최고경영자 자리를 승계하니, IMF 사태에서처럼 30대 재벌의 절반이 도산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게 재벌 체제의 문제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요즘 이건희 회장의 행태를 보면 바로 이런 재벌체제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들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게 아닌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경영 복귀 선언 이후 이 회장이 친정 체제를 강화하는 문제점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삼성의 비서실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 나와 있듯이 온갖 불법과 비리의 온상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비서실은 그룹 전체를 통괄하고 특히 회장의 과오를 견제하는 역할도 합니다. 비서실이 견제하지 않으면 회장의 오류가 그냥 설사하듯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걸 비서실이 일정 정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삼성이 다른 재벌보다 앞서게 된 데에는 이런 비서실의 역할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서는 친정 체제가 강화되면서, 비서실이 걸러주는 기능이 거의 마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마치 이 회장의 양아치 같은 발언이 그대로 터져 나오는 형국입니다. 이는 단순히 형제 간 재산 싸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엉터리 같은 총수의 행태가 계속되면 그룹 전체가 흔들립니다. 삼성은 비서실을 포함해 경영위계제(Managerial Hierarchy)가 다른 재벌에 비해 발달해 있었는데, 그런 장점이 약화될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본인과 같은 재벌개혁론자에 대해 재벌을 죽이거나 혼내주려고 하는 사람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커다란 오해입니다. 재벌개혁은 재벌이 요즘 삼성의 행태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벌을 거듭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삼성을 비롯한 재벌도 좋아지고 나라도 좋아지기 때문입니다(재벌개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본인 블로그의 다른 글들을 참고하십시오).

우선 국민 교육에도 좋지 않은 이 회장 형제의 행태는 하루빨리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계기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국민들이 새삼 깨닫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장하준 교수

어제 만난 교수가 본인에게 장하준 교수 등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최근 책에서 그들이 본인을 포함한 재벌개혁론자들을 비판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아울러 그 해당 부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미 본인은 작년(2011)에 장하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해 두 번이나 비판한 바가 있습니다(블로그 링크는 http://blog.daum.net/kkkwkim/115http://blog.daum.net/kkkwkim/117입니다).

거기서 본인은 장 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장 교수의 주장은 기본적인 사실(fact)에서도 오류가 적지 않고 자기 논리의 단순한 허점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번 책에 대해 굳이 다시 검토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학자이지만 이번 책은 지난번 책에 비해 그리 많이 팔리지도 않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번 책에서 본인을 거명하면서 비판한 부분이 있으므로 그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장 교수 논리의 문제점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는 이전 글을 참고해 주십시오. 한 마디로 장 교수의 이번 책도 지난 번 책과 마찬가지로 엉터리를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언급된 부분(387~8쪽)만 가지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본인은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정리해고제도 자체를 폐지할 수는 없지만 사회안정망의 필요성은 물론이고 정리해고가 무분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블로그 http://blog.daum.net/kkkwkim/140 참조).

그런데 이 책에서는 본인이 이런 지적을 했다는 걸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희망버스에 문제점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했는데 본인도 희망버스가 절망버스라고 한 것처럼 써놓았습니다. 이 정도의 왜곡은 다른 사람들도 본인에 대해 저질렀으므로 크게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본인이 스웨덴을 한물 간 나라로 여기거나 한국이 ‘작은 미국’(Little America)으로 가야 한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본인이 그렇게 주장했다고 장 교수 등이 말해 놓았습니다.

본인은 20년 전쯤부터는 일관되게 북유럽 비슷한 복지 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극우로 변절했지만 아는 사이였던 교수가 조선일보에서 스웨덴에 대해 엉터리 왜곡을 하기에 직접 e메일을 보낸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장 교수 등은 사실을 날조한 셈입니다. 게다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란 책 등에서는 본인을 비롯한 재벌개혁론자들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비난해놓고 한겨레21 인터뷰에서는 본인 등이 신자유주의자는 아니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사소한 실수도 아니고 자기의 논적들에 대한, 이렇게 중요한 규정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도대체 장 교수 등은 아무렇게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발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추가 : 처음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나서 정승일 박사와 TV 토론을 하게 되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란 책 전체를 읽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본인 이외 분들에 대한 날조도 이 책에는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책에선 김상조 교수가 SK와 소버린(모나코 국적의 자산운용 회사)이 대립할 때 소버린을 지지했다고 쓰고 있는데, 김상조 교수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또 김대환 장관이 민주노총을 깨려 했다고도 쓰고 있는데, 김 장관이 민주노총과 사이가 나쁘기는 했지만, 민주노총을 깨려 했다는 것은 어디서도 들은 바 없는 날조로 보입니다. 그밖에도 여러 날조가 있습니다만 생략하겠습니다.)

작년(2011)에 본인이 장 교수를 비판한 글을 썼을 때 그는 제대로 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사들이 지면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장 교수에게 아부(?)하는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본인의 비판과 관련되어서 아주 조금만 언급했을 뿐입니다(본인의 장 교수 비판 두 번째 글은 바로 이런 언급조차 엉터리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니 장 교수는 본인의 글에 대해 사실이나 논리를 가지고 반론을 쓰지는 않고 무슨 대가(大家)인 것처럼 말로 슬쩍 넘어가다가 이번에는 아예 사실을 날조해서 중상모략까지 한 것입니다. 학자인지 출판계의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꾼인지 의심스런 대목입니다

이들은 한국 현실에 대해 꼼꼼히 따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글도 제대로 읽지 않고 김 지사나 이 회장처럼 함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번 주 한겨레21 특집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저자들이 유명인사가 되는 세상이니 정치 현실인들 뭐가 다를까요. 본인이 너무 흥분했나요. ㅎㅎㅎ. 사실 한국의 유명 엘리트들은 명성과 실상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이 블로그에서 예전에 연재한 ‘신정아 씨의 억울함과 한국 사회의 치사함’도 바로 그런 부분을 다룬 것입니다.

장 교수 등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부분이 적지 않고, 사실과 논리가 부실하고, 또 지적 권력을 가지고 위세를 부리기 때문에 본인이 약간 열을 받은 것 같습니다. 장 교수는 두뇌가 뛰어난 수재입니다. 그러나 외국 일부 학자들의 논리를 가지고 아무 데나 덮어씌우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영국에 앉아 있으면서 한국 문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등 온갖 문제를 다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제대로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가 제일 많이 알 것 같은 한국 현실에 대해서도 엉터리가 많으니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러 무심할 것 같습니다. 본인이 아프리카 전공자가 아닙니다만, 그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나오는 아프리카에 관한 이야기는 기본 통계 해석조차 잘못되었음을 작년 글에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 대한 공부가 나쁜 건 아닙니다만, 아는 만큼 이야기한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데 연예인급 학자가 되면 그게 어려워집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금욕의 자세를 가지려고 합니다만, 그렇지 못할 땐 독자 여러분이 질책해 주십시오.

부디 장 교수도 박학천식(博學淺識) 자세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연구 테마를 하나 붙잡고 깊이 있는 연구를 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그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공부를 하면서 읽은 문장 중에 (정확한지는 자신 없습니다만) ‘We should know something of everything and everything of something’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학자라면 특히 이런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각계를 대표하는 한국의 부실한 엘리트들을 비판해 보았습니다. 부실한 엘리트 말고 충실한 엘리트들을 다룰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 영어 문장은 헉슬리(Thomas Henry Huxley)가 『Nature』(Vol. XLVI, 30 October 1902, p.658)에 쓴 ‘Try to learn something about everything and everything about something’이 맞는 것 같아 함께 인용합니다.


김기원
1953년 부산에서 출생해 부산경남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 후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2014년 12월 7일 간암으로 별세했다. 일제 귀속 재산 연구를 통해 재벌의 근원을 파헤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 논문은 『미군정기의 경제구조』로 출간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재벌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하면서 『재벌개혁은 끝났는가』를 펴냈다. 이 외에 『현대자본주의론』, 『한국산업의 이해』, 『생활 속의 경제』, 『경제학 포털』,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등을 썼고, 『기업시스템의 비교경제학』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일본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국 유타대학 경제학과 객원연구원,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고,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산업조직학회, 한국경제발전학회, 서울사회경제연구소 등에서 활동했다. 8·15 해방 직후 한국의 경제 상황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인 재벌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왔고, ‘북한’과 ‘북한 사회’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등을 통해 현실 참여에도 적극 나섰다. 2013년 9월부터 1년 동안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도 ‘베를린통신’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인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에 41편을 기고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김 교수는 진보 성향을 분명히 하면서도, 진보 진영이 흔히 비판받는 ‘경직성’과 ‘도그마’를 경계했다. 특히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현실에 기반을 둔 진단과 대안 제시’를 큰 원칙으로 삼아 직접 실천함으로써 후학에게 존경을 받았다. 김기원 교수의 글은 페이스북블로그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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