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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擬人化’와 ‘유쾌한 사물들’

사람 내음 깊이 담은 사물 이야기, 최장순 수필집 『유쾌한 사물들』

『유쾌한 사물들』은 문고판을 닮은 몸체에 250쪽을 품은 아담한 책이다. 하지만 그 아담함 속에는 250kg이 훌쩍 넘는, 커다랗고 육중한 몸집을 갖고 있는, 거구(巨軀)가 숨어 있다. 형식적으로 하는, 단순한 과찬을 위한 부풀리기 표현이 아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윤오영, 1974), 「가난한 날의 행복」(김소운, 1978), 「낙엽을 태우면서」(이효석, 1938) 등 수필 명작(名作)처럼 좋은 생각이 글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장순 수필집 『유쾌한 사물들』은 사람 내음을 깊이 담은 사물 이야기다. 글을 읽을수록, ‘수필(隨筆)’을 ‘수필(秀筆)’로 만드는 바탕은, ‘작지만 사소한 아름다움’에 있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문득 생물과 무생물은 인간의 기준에 따라 만든 구별일 뿐 지구에, 우주에 무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사진=Pixabay

‘擬人化’와 ‘유쾌한 사물들’

사람 내음 깊이 담은 사물 이야기, 최장순 수필집 『유쾌한 사물들』
수필(隨筆)을 수필(秀筆)로 만드는 바탕은 ‘작지만 사소한 아름다움’
‘상품’이 된 ‘사물’은 온기도, 존재감도 사라지고 ‘사람’을 뿌리친다

사람과사회™ 2018 겨울 2019 봄 제8·9호

수필가인 최장순 작가가 수필집을 냈다며 『유쾌한 사물들』(북인, 2018)을 보내주셨다. 예스24를 찾아보니 2018년 10월 31일, 시월의 끝 날을 발행일로 잡아 출간한 수필집이다. 그동안 몇 편의 수필을 읽었지만 선생의 ‘수필(隨筆)’은 참 좋은 ‘수필(秀筆)’이라는 생각이 컸다.

『유쾌한 사물들』은 문고판을 닮은 몸체에 250쪽을 품은 아담한 책이다. 하지만 그 아담함 속에는 250kg이 훌쩍 넘는, 커다랗고 육중한 몸집을 갖고 있는, 거구(巨軀)가 숨어 있다. 형식적으로 하는, 단순한 과찬을 위한 부풀리기 표현이 아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윤오영, 1974), 「가난한 날의 행복」(김소운, 1978), 「낙엽을 태우면서」(이효석, 1938) 등 수필 명작(名作)처럼 좋은 생각이 글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언어와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에서 무의식적인 심적(心的) 구조와 사회 구조, 그리고 언어 구조가 일체를 결정하며, 주체로서의 인간이나 자아의 관념은 허망이라는 반인간주의적(反人間主義的) 사상을 펼쳤고, 이는 구조주의의 유행을 이끌었다. 심리, 사회, 언어가 인간과 자아를 포함해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는 푸코의 철학은 이 책의 저자가 사물(事物)을 인간(人間)으로 의인화(擬人化)해 ‘유쾌한 사물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유쾌한 사물들』 첫 글인 「공구학 개론」은 ‘공구’와 ‘공구함’을 다룬 글이다. 작가는 공구함을 보며 “세월에 녹슬지 말라는 당부이자 나에 대한 보살핌”이라고 이야기한다. 톱, 줄, 망치, 드라이버, 끌, 대패 등 ‘공구함 가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심장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가족이 저마다 다른 성격과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듯이 공구함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톱이 물건을 자르는 모습에서 사냥과 공격과 방어를 이야기한다. 무딘 톱날은 줄이 도와준다. 망치는 때리기와 맞기를 비유하며 군인과 법관, 설화(舌禍)의 망치가 등장한다. 드라이버는 조임과 풀어냄을, 끌은 세공과 예술가를, 대패에서는 목수와 결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공구학(工具學)은 인간학(人間學)”이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공구를 포함해 작가가 바라보는 사물들은 단추, 신발, 주전자, 어금니와 송곳니, 손수건, 우산, 호루라기, 그릇, 모자 등 일상에서 만나는 ‘친구’다. 또 네모와 동그라미, 체온, 구석과 모퉁이, 색깔, 묵념, 시간, 봄과 고양이, 초생달, 저녁, 눈빛 등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도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 속에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내용이 ‘함뿍’ 들어 있다.

문학평론가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를 예로 들며 “사물들에서 온기가 사라져가고 있다”며 “과거 사물과 인간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행복한 대화의 관계, 인간적인 관계였으나 사물이 상품으로 바뀐 후에는 사물이 인간을 뿌리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필집 『유쾌한 사물들』 속에는 물신(物神)의 노예였던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감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인간화된 사물’을 다루고 있다고 썼다.

최 작가는 책에 넣은 ‘자기소개’에서 “강릉에서 태어났다. 대관령을 든든한 배후로, 경포 앞바다를 놀이터로 내 무른 뼈는 단단해졌다. 오랜 시간 무훈(武勳) 없는 군인의 길을 걸었고, 쓰지 않을 수 없는 절실함이 글을 쓰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글을 쓰게 만든 절실함, 그 절실함은 사물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찾아 그를 불러내고 싶었거나, 사물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사물이 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그의 생각은 『유쾌한 사물들』에서 엿볼 수 있다.

수필집 제목으로 쓴 「유쾌한 사물들」은 맨 끝에 있다. 물웅덩이, 거울, 연못, 하늘, 개미, 지구본, 지렁이, 매미, 징검다리, 계단, 꽃, 칡과 소를 다룬 글이다. 글 끝에 있는 문장, “매일 달라지는 사물과 풍경을 왜 자주 알아채지 못했을까. 발걸음을 따라 무언가를 속삭이는 천사들의 말을 왜 알아듣지 못할까?”라는 대목이 눈에 쏙 들어온다.

최장순 수필집 『유쾌한 사물들』은 사람 내음을 깊이 담은 사물 이야기다. 글을 읽을수록, ‘수필(隨筆)’을 ‘수필(秀筆)’로 만드는 바탕은, ‘작지만 사소한 아름다움’에 있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문득 생물과 무생물은 인간의 기준에 따라 만든 구별일 뿐 지구에, 우주에 무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최장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육군에서 오랜 세월 몸담고 대령으로 전역한 후 ‘쓰지 않을 수 없는 절실함’에 글을 쓰게 됐다.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와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이별연습』(2009)과 『유리새』(2013)를 출간했다. 경기도문학상(2009), 현대수필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2007, 문예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국제펜(International PEN) 회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 계간 『에세이피아』 주간 및 발행인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일현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쓸 때 “일상을 떠난 삶이 없듯, 일상을 벗어난 문학도 없다”, “작가는 일상의 반복성에서 오는 지루함과 싸우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쓴다.

About 김종영™ (915 Articles)
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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