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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자락에서

언니들과의 시원한 야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달맞이꽃이 유난히 환했다.

옛날 우리 집은 객식구로 늘 북적거렸다.

남도의 사람들에게는 경기도 연천이 서울 비슷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너덧 명 사촌들이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며 학교도 다니고 취업준비도 하고, 더러는 엄마 아빠 일을 도우며 가족처럼 지냈다.

집안 제일 막내였던 나를 업어 키운 사람은 사촌, 순임이 언니였다. 그래서 언니랑 지낸 시간이 내 어릴 적 대부분을 차지한다. 언니도 어린 나이였으니 힘들기도 했을 텐데 나를 참 많이 예뻐해 주었다.

언니는 손끝도 야무져 음식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했다. 언니가 틀어 놓은 라디오 옆에서 나도 엎드려 다리를 까딱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동요보다 먼저 배운 노래가 조경수니 이은하, 조용필이 부르는 가요.

동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느티나무 아래 세워 놓고 노래를 부르게 하곤 재미있어 했더랬다. 발음도 잘 안 되는 어린애가 부르는 가요는 그 동네 인기 최고였다. 즐길 게 없던 시골이라 그런 것 같다.

초저녁잠이 많았던 내가 저녁께 설풋 잠에서 깨면 집안은 깜깜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집 앞에 모여 옥수수나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여름이었다.

아버지가 하시는 예식장 뒤편에 살림집이 있었으니, 식구들이 모여  여름밤을 보내곤 하던 예식장 앞으로 가려면 반드시 그 넓고 컴컴한 예식장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거기를 혼자 지나가는 건 왜 그리도 무서웠는지… 두 눈을 질끈 감고 달려가 모여 있는 식구들을 보고 나서야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말을 두런두런 나누고,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종아리에 달라붙는 모기를 쫓으며 쏟아지는 별들만 세곤 했다.

지금은 시골이라도 대개의 집에 욕실이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가장자리를 에둘러 있는 개울에서 멱을 감았다.

낮이면 아이들의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던 그 개울에서 어른들은 밤을 타  더위를 식혔다. 밤이 한층 깊어지면 언니들은 목욕 준비를 했다. 나는 무서움을 많이 타서 따라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여자 형제들이 다 가는 그 은밀한 야행을 조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개울까지는 캄캄한 밤길을 한 참 걸어가야 했는데, 캄캄한 밤길에 아카시아가 훅 하고 향기를 뿜을 즈음이면 거의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울 앞에는 높다란 둑이 있어 처녀들이 눈을 피해 멱감기에는 그만이었다.

내가 요란하게 첨벙 소리를 내면 언니들은 질색을 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굳이 마음먹으면 훔쳐보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 시각에는 어떤 마을 남자들도 개울가를 얼씬거리지 않았다.

등에 비누칠을 해 주던 순임 언니의 부드러운 손가락, 달빛에 비친 언니의 하얀 젖가슴에 어린 나는 왜 그리 설레었는지… 여름밤을 식혀주던 차고 깊은 물, 처녀들의 순진한 웃음소리… 언니들과의 시원한 야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달맞이꽃이 유난히 환했다.

어린 날 좋은 추억을 함께 한 순임 언니는 마흔 다섯에 혼자가 되었다. 형부는 간암으로 세상을 뜨셨다. 언니의 아들이 이번 주에 장가를 간다는 소식에 언니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새신랑도 부디 잘 살고 언니도 이제 좀 편히 지냈으면 좋겠다.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 바람 속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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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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