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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엄마, 나쁜 엄마

"사랑하기 때문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내는 것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시간을 내주지 못하면 나쁜 게 맞다. 그러니까 이유야 어쨌든 아이에게 너무 바쁜 엄마는 나쁜 엄마였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석 달 넘게 나는 나쁜 엄마여야 했다"

“유산기가 있으니 되도록 움직이지 마세요.”

2002년 가을이었다. 3년 만에 어렵게 둘째를 가졌는데 병원에서는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풀이 죽은 채 산부인과를 나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남편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병원에서 들은 말을 전하려는데 남편의 표정과 상태가 심상치가 않았다.

내가 진료를 받는 동안 남편은 음료수를 사려고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내려가다가 구두 뒤축이 계단에 걸려 넘어지면서 접힌 다리를 깔고 앉았단다.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기분이 안 좋아 아프다는 남편을 채근하며 일으켜 세우려는데 남편은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지난 밤 지도교수와 가진 술자리에서 알게 된 결과도 좋지 않았다. 그런 차에 나를 데리고 산부인과에 왔다가 골절이 됐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남편은 매 학기 기대했던 임용에서 고배를 마시며 의욕과 자신감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고, 나 역시 남편과 큰 아이 뒷바라지에 진이 빠져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 둘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통장에는 27만원밖에 없는데 남편은 수술을 해야 했으니, 뱃속 아기의 위중을 근심할 게재가 아니었다.

일을 해야만 했던 나는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글짓기 학원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쳤다. 남편의 입원으로 오전에는 병원에서 보내고 낮에는 학원에서 일하고 저녁에 녹초가 되어 돌아와 딸아이를 돌보았다.

아이는 꽤나 영리했지만 말이 느려 자기가 꼭 필요한 말을 한 단어로만 이야기 할 즈음이었다. 한번은 몸도 마음도 지쳐서 안아주려 했다. 그런데 아이는 휙 돌아앉았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아이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간지럼을 태우며 다시 안으려 했다.

“미워!”
“왜~~~?”
“바빠.”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그저 꼭 끌어안아 주었다. 차라리 재잘 재잘 말 잘 하는 아이의 말이었으면 마음이 조금 덜 아팠을까.

아이는 자기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한 것이었다. 하루 종일 얼굴도 안 보이는 엄마를 그리며 그 단어를 생각해 냈으리라. 세 살 아이의 단호한 표정에서 아이가 종일 얼마나 울고 싶었을지, 그 작은 머리로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끝내 미워지기까지… 아이의 마음이 읽혀 아팠다. 엄마 미운 이유가 너무나 명확해서 나는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어른인 우리도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고 너무너무 그리워하다 보면 미워지지 않은가. 바쁜 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이라면 잘못인 게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바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사랑하기 때문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내는 것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시간을 내주지 못하면 나쁜 게 맞다. 그러니까 이유야 어쨌든 아이에게 너무 바쁜 엄마는 나쁜 엄마였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석 달 넘게 나는 나쁜 엄마여야 했다. 남편이 한 달 만에 퇴원한 뒤에는 그의 강의 경력을 단절시킬 수 없어 오전 내내 운전한다, 남편 학교의 강의실 이 강의실 저 강의실을 따라 다닌다, 그렇게 오전을 보냈다.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남편 학교에 따라 다니고, 오후엔 어김없이 내 직장인 학원으로 가야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유산기 있다던 아기가 상황을 알았는지 최악의 상태인 엄마 뱃속에서도 강하게 자라 주었다는 것. 그 나락 같았던 한 학기가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게 견뎠던 시기였던 듯하다.

내려갈 수 없는 상황까지 내려가다 보니 바닥이었고, 고맙게도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남편에게 기회가 주어져 바닥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아이의 투정 ‘엄마, 바빠, 미워’. 아이는 기억도 하지 못할 말, 그 아린 말이 아직도 마음속에 박혀 있다. 대개의 맏이들은 기반이 잡히지 않은 부모와 함께 힘든 시기를 보낸다.

청년 실업률이 매 달 기록을 깨며 바닥을 친단다. 그나마 직장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 역시 경제 하락과 비정규직등 불안정한 고용의 늪에서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황폐한 시기에 ‘꿈’을 가지고 정진하는 젊은 친구들은 또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는지…

까치 울음소리가 가을 하늘을 두드리는 아침이다. 오늘도 바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사람들 마음 속에, 부디 청명한 소리가 울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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